[썰-스데이] “내가 포기하면 환자는 죽는다”…울산 생명선 지킨 외상센터 10년의 사투
[울산매일UTV 팟캐스트 썰-스데이] ep9. 울산대병원 권역의료센터 김지훈 센터장
2026-06-11 최영진 기자
과거 최장 72시간 연속 근무라는 불모지 같은 환경 속에서도 ‘내가 먼저 포기하면 환자는 100% 죽는다’는 일념으로 버텨온 김 센터장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지식을 배워야 했던 외과의사로서의 가혹하고 잔인한 현실을 가감 없이 고백했다. 또한 복부 자상 환자가 가까운 응급실을 두고 1시간 20분을 달려와야만 하는 구급 이송체계의 맹점과 현실과 동떨어진 닥터헬기 인프라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한편, 울산 최초로 도입해 성공적인 신뢰를 구축한 ‘닥터119’ 사업 등 의료 분쟁 예방 및 상생 전략을 심도 있게 다뤘다.
아울러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경제·정서적 한계에 부딪혀 현장을 떠나가는 완숙기 전문의들의 이직 문제, 전국 외상센터의 급격한 고령화 등 어두운 미래의 극복 과제까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로 담아냈다. 어떠한 환자라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울산 시민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권역외상센터 10년의 기록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 이번 팟캐스트 내용 일부를 지면에 소개한다.
△ 외상 분야라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
- 김지훈 : 전공의 시절 결혼을 3개월 앞두고 상견례를 다녀오다 척추와 장기가 파열되는 큰 사고를 당한 여성 환자를 만났습니다. 이틀 밤을 새우며 치료하면서도 ‘과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회의적이었죠. 그런데 1년 뒤, 병원에서 우연히 그 환자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너무나 멀쩡하게 걸어 나오시더군요. 그때 전율이 일었습니다. 암은 치료 후에도 5년, 10년 재발 위험을 안고 살아가지만, 외상은 한 번 제대로 치료해 놓으면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 매력에 이끌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외상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 실제 일과나 스케줄은?
-김지훈 : 한 번 출근하면 기본 24시간 풀로 근무하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당직 날 환자가 들어오면 인수인계를 하고 안정되는 것까지 봐야 하니까 보통 30시간에서 32시간 연속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과거 경기 북부 외상센터에 의사가 3명뿐이던 시절에는 스케줄이 꼬이면 최장 72시간 동안 혼자 병원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3일째가 되면 환자를 보는 집중력과 능력 자체가 뚝 떨어지는 게 몸으로 느껴지죠. 그래서 울산에 온 뒤로는 백업 팀 시스템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현재는 최장 근무 시간을 48시간 이내로 제한해 가능하면 24시간 근무를 넘기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 권역외상센터의 현실
△ 외상센터와 일반 응급실과의 차이점은?
-김지훈 : 외상센터는 모든 외상 환자가 아니라 ‘중증 외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상센터가 생기면서 오히려 외상 환자들이 갈 데가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119 구급대나 일반 병원들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무조건 외상센터로 가라”며 환자 수용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배에 칼을 찔린 자상 환자가 있다고 칩시다. 혈압도 안정적이고 출혈이 겉보기에 심하지 않다면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초기에 상태를 파악하고 응급처치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반 병원에서 아예 안 받아버리니, 밀양·경주·양산 같은 곳에서 1시간 20분을 달려서 울산에 있는 저희에게 옵니다. 그 이송 시간 동안 아무런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거죠.
△ 울산에서 최초로 실시한 ‘닥터카’ 사업이 뭔가요?
-김지훈 : 2017년부터 전국 최초로 의사가 구급차를 타고 현장이나 지역 병원으로 출동하는 ‘닥터카’ 사업을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119 소방이나 타 병원에서 “의사가 와서 뭘 하겠다는 거냐”며 불신과 오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타 병원 응급실까지 가서 급한 소모품을 지원받아 현장 수술을 시행하는 등 신뢰를 쌓았죠. 지금은 울산소방본부에서 전속 직원과 구급차를 배정해 주셔서 ‘닥터 119’라는 이름으로 함께 출동하고 있습니다. 울산 시민들은 최소한 길 위에서 처치가 늦어져 목숨을 잃는 일은 없도록 지켜내고 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김지훈 : 의사에게는 잘된 케이스보다 살리지 못한 케이스가 평생 잔상으로 남습니다. 과거 경기 북부 센터 시절, 72시간 연속 근무가 끝나갈 무렵 철원에서 이송된 젊은 군인이 있었습니다. 이미 이송 시간이 너무 길어 배가 남산만하게 부어 있었고 15분 만에 사망했죠. 잠시 후 100일도 안 된 아기를 안은 젊은 아내가 들어와 오열하는데,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내가 미리 안 될 거라고 짐작하고 포기한 건 아닐까, 뭐라도 했으면 1%라도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그 환자 이후로 저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습니다. 외상외과 의사를 하면서 가장 마음 아프고 가혹하다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죽어야만 내가 엄청난 지식을 배우고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죽음을 통해 배운 지식이기에 너무나 소중하지만, 우리 후배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겪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 반대로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지훈 : 역시 아이들을 살렸을 때입니다. 저희끼리 “나이가 깡패”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은 회복력이 대단합니다. 14살 아이가 아파트에서 추락해 응급실에서 다들 사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수술하고 온갖 처치를 다 해서 살려냈고, 3개월 뒤 아이가 제 발로 걸어서 외래 진료를 오더군요. 성인 환자도 보람차지만, 아이들은 앞으로 대통령이 될 수도, 나라를 구할 수도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잖아요. 그 가능성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 울산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는 보건복지부 평가에서 전국 최상위권이고, 생존율도 전국 최고 수준인데 그 비결은?
-김지훈 : 철저한 ‘팀워크’와 ‘피드백’ 덕분입니다. 저희는 매일 아침 전 직원이 모여 전날 들어온 환자 케이스를 다 같이 봅니다. 경험이 적은 주치의가 놓친 허점들을 베테랑들이 찾아내죠. 얼마 전 막내 의사가 “매일 아침 도마 위에 올라가는 생선이 된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그 시간이 굉장히 괴롭고 스트레스겠지만,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어이없는 죽음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시스템과 책임감이 독보적인 생존율을 만든 원동력입니다.
△ 올해로 외상센터 개소 11년 차를 맞이하셨는데,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김지훈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국적으로 외상센터 의료진이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외상센터가 늙어가고 있는 거죠. 밑에서 젊은 의사들이 유입되어야 하는데 신규 인력이 없습니다. 올해 전국의 외상 전담 전문의 시험을 보는 인원이 10명이 채 안 됩니다. 외과 의사 기준으로는 1년에 고작 6명 수준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회의감이 오는 순간 다들 떠납니다. 밤낮없이 집을 비워야 하니 가정과 멀어지고, 병원 내에서도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과에 비해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2차 병원으로 이직하면 지금 급여의 2.5배를 받는데, 개인의 희생과 사명감만으로 이 길을 지키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마지막으로 국가나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지훈 : 정부가 ‘거점외상센터’를 늘리겠다고 하지만 현장을 채울 인력이 없는데 센터만 짓는 것은 현실적인 대책이 아닙니다. 의료진들이 돈이나 행정적인 걱정 없이, 오직 ‘환자를 살리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갖춰지기를 바라며, 시민 여러분도 외상센터가 여러분 곁에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고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김 센터장은 권역외상센터의 성공적인 운영과 지역 의료 상생을 위한 핵심 열쇠로 의료진 개인의 희생이나 화려한 명성보다, 실패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철저한 팀워크’와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이라는 기본기를 강조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해 ‘국가 정책적 지원’과 지자체의 ‘과감한 재정 투자’야말로 시민의 생명선을 지키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퇴근길과 저녁 식사 시간을 지적 대화로 채워줄 든든한 친구 ‘썰-스데이’는 지면 QR코드 또는 울산매일UTV 유튜브(@ulsanmaeil), 공식 홈페이지(www.iusm.co.kr), 인스타그램(@ulsan_maeil)에서 시청할 수 있다.
● 김지훈 울산권역외상센터장 (외상외과)
▲ 전문분야 : 중증외상 및 외상중환자, 복부외상, 혈관외상
▲ 학력
-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석사 졸업
- 가톨릭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박사 졸업
▲ 경력
- 서울아산병원 외과 전공의 수료
- 강릉아산병원 외과(외상분야) 임상강사
- 서울아산병원 외과(혈관분야) 임상강사
- 강릉아산병원 외상 및 중환자 임상조교수
-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외상센터 조교수
- 울산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임상조교수
- 울산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임상부교수
▲직책
- 현, 울산대학교병원 울산권역외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