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장동혁과 정청래를 보유한 대한민국 정치
언제부턴가 흥이 사라진 우리사회 지방선거 이후 여야 지도부 흔들 장동혁 책임론 회피에 비난 쏟아져
지난 주말, 자랑스런 태극전사가 역전의 용사로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월드컵 1차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체코와 극적인 승부를 펼쳤다. 선취골을 내주고 역전승을 이끈 경기는 광화문 광장을 들었다 놨고, 주말 근무 중 TV 앞에 선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후반 막바지, 오현규의 역전 골이 터졌을 때, 잠자던 2002년 4강 신화의 유전인자가 불쑥 깨어나 '오~대한민국'을 걸개로 걸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지게 했다. 하지만 사무실 한쪽 방, 사각의 화면에다 대고 탄성을 지른 필자의 흥분은 낯설었다. 더 이상 월드컵 역전골은 우리를 모두 하나로 만들지는 못했다. 무의식처럼 터져 나온 함성은 그냥 뜬금없는 괴성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흥이 사라졌다.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서 느끼는 통합의 정서는 서로가 하나라는 무의식적 연대감이었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도 쑥스럽다. 스포츠 경기 때면 주택가와 사무실 모두, 아니 거리 곳곳의 응원 공간은 이해관계가 없는 순결한 애국심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소였지만 이제 그 공간마저 사라졌다. 울산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번 월드컵에서 울산의 거리응원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마 4년전까지 문수월드컵 경기장 호반광장에서 펼쳐진 시민응원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월드컵이 시작되면 분열과 갈등을 잠시 접고 우리는 하나라고 애써 손을 잡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도 전설이 됐다.
그 분열의 중심에 지방선거 직후 이상 행보를 보이는 장동혁과 정청래가 있다. 장동혁과 정청래 만큼 지방선거 이후 이슈의 중심이 된 정치인은 없어 보인다. 선거 때도 그랬고 선거가 끝난 뒤에도 장동혁과 정청래는 급해 보였다. 장동혁은 당장 재선거 깃발을 들고 연일 잠실 시위 현장에 달려가고 있다. 정청래도 안달이다. 정청래는 사퇴 압박이 당내외에서 조여오자 광주로 달려갔다. 민주의 성지라는 광주에서 최고위 회의를 주재하며 '단결'을 반복하며 이재명 정부 성공을 다짐했다. 정청래의 이재명 정부 성공 다짐과는 달리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 경고'라고 평가했고, 순방 출국 배웅단에서 정청래를 배제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청래는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정청래가 누군가.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의 강성 친명계를 자처하는 4선 의원이다. 그는 충청남도 금산 출신으로 건국대 산업공학과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소속으로 주한 미국 대사관저 점거농성 사건을 주도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출소 후 운동권 출신들의 생계 방편이던 학원강사로 활동하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데뷔했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의 첫 생활정치 네트워크의 이름은 '국민의힘'이었고 그 단체의 초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장동혁 이야기를 해보자. 장동혁은 국민의힘에서 짤린 한동훈이 만든 정치인이다. 그는 윤석열 정부 시절인 지난 2023년 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직후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율사출신으로 민주당과 각을 세우며 단호한 메시지를 내놓는 이미지로 한동훈의 신임을 얻은 그는 초선이 사무총장을 맡는 파격 출세의 주인공이 됐다. 이미지 정치는 생명이 짧았다. 한동훈과의 밀월관계는 윤석열의 계엄 이후 본색을 드러냈다. 탄핵정국이 시작되자 당권파의 앞줄에 서서 새로운 깃발을 흔들었다. 그 깃발엔 '탄핵반대' 네글자가 선명했고 '친윤'을 인감도장으로 품고 다녔다.
장동혁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보수의 이름으로 명함은 팠지만 알고보니 극우골통, 태극기 비스무리한 색깔을 속옷으로 입고 있었다. 본색이 드러난 장동혁은 지방선거 직전 미국 출장으로 구설에 오르더니 선거가 끝나자 마스크로 위장술을 펼치는 중이다. 이번에도 그는 출구를 찾고 있다. 지방선거 책임론이 대두되자 눈알을 굴리던 그는 절묘하게도 부패의 온상인 선관위 척결을 명분으로 부정선거론을 띄우는 중이다. 잠실 투표소를 중심으로 2030 세대가 몰려들자 마스크까지 썼다. 개혁파를 중심으로 연일 당대표 책임론과 사퇴압박이 이어지자 '부정선거' 깃발을 그려놓고 매일 밤 흔들어대는 모양새다.
지금 장동혁으로 대표되는 국민의힘 당권파는 부정선거와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트로피처럼 들고 이번 지방선거가 사실상 선전한 것이라는 정신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실상을 보면 참담하다. 서울시 구청장 선거는 25곳 중 민주당이 17곳을 차지해 야당의 참패였다. 대구시장 선거도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역대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고 부산과 울산시장 선거는 수성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초·재선이 중심인 '대안과 미래'는 "장동혁은 정신 승리 같은 아전인수 해석을 그만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장동혁의 전면 재선거 주장이나 부정선거 음모론은 보수 재건에 걸림돌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선거를 두고 보수의 희망을 봤다고 이야기 하지만 천만에다. 여전히 국민의 눈에 국민의힘은 국민의짐이다. 여기서 보수는 현실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박근혜와 윤석열이라는 두 번의 탄핵과 함께 보수는 사실상 길을 잃었다. 진보좌파가 세상이 중심이 됐고 그 위세는 북풍 칼바람도 훈풍으로 바꿀 만큼 매서웠다. 그 위세 당당하던 좌파가 이번 지선 이후 흔들리고 있다. 진보좌파에서 내부균열이 벌어지고 강성인사들의 막말과 대통령의 과거사 지우기가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보수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시점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부산과 울산을 잃었지만 서울을 지켰다. 부산 북구에서 한동훈이 쏘아올린 기적의 승리와 울산 남갑의 승리는 보수의 희망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계파 싸움에 몰두한다면 희망이 없다. 제대로 된 보수 재건을 위한다면 얼치기 보수에 대한 양심선언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정치 구도가 만들어진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성적표를 받았다. 무엇으로 국민들의 흥을 이끌어 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