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희생 보고 16세에 자원입대”…92세 참전용사의 회고

[6·25전쟁 76주년 참전용사 인터뷰]

2026-06-25     윤병집 기자
김일병(92)씨가 6.25전쟁 참전 당시 자신의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다. 최지원 기자
“우리 동포끼리 서로 총부리 겨눈 전쟁 아니겠어? 근데 아무 관계 없는 미국인이 남의 나라 지키겠다고 와서 목숨을 잃은 거야. 그때 느꼈지 ‘아, 이러면 안 된다. 우리나라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게 됐지.”

6·25전쟁 참전용사 김일병(92) 씨는 76년 전, 불과 16세의 나이로 학도병에 자원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포항에서 처음 소총을 쥐었을 때, 영광의 38도선 북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장진호 전투와 1.4후퇴, 사체로 산을 쌓았던 고지전까지. 계급도 없던 풋내기 학도병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르고 살아 돌아와 한 가정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버지가 됐다.

김일병 씨는 1934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 근처에서 태어났다. 3살 무렵 포항으로 이주해 현재 북구 양학동 부근에 살았다고 한다. 포항남부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동지중학교에 3학년으로 재학하던 무렵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했고, 8월 10일 김 씨가 살던 포항까지 점령했다.

피난길에 올랐던 김 씨는 포항 시내와 인근에서 형성된 피난민 촌에서 머물면서 처음 시신을 봤다. 그 중에는 미군도 있었는데,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고 있는데 부끄러움을 느끼고 학도병으로 자원입대를 결심했다고.

그는 “처음 지휘관이 나보고 너처럼 어린 녀석이 왜 왔냐고 걱정을 하더라고. 내가 자신 있다고 고함을 지르니까, 주소랑 아버지 존함만 적어가고는 M1 소총 한자루를 내주더라. 옷도 성인복이라 상하의 다 앞부분을 잘라내서 억지로 맞췄어”라며 “기세 좋게 입대했는데, 정작 노리쇠 후퇴시키는 데도 힘이 달려서 장전손잡이에 엄지손가락이 찝히기 일쑤였다. 낙동강 전선까지 살아돌아온 베테랑 선임분들이 곁에 있었기 망정이지”라며 말했다.

대대에 배치된 김 씨는 현재 포항제철 공장이 있는 형산강 부근에서 밀려드는 인민군의 도하를 막아내며 한 달가량 혈전을 벌였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서울을 탈환한 한국군이 10월 2일 새벽 5시 38도선을 넘어 북진할 때 김 씨도 수도사단에 배치돼 가장 먼저 이북 땅을 밟았다. 그의 부대는 압록강 눈앞까지 진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함경도 장진호에 포위되는 위기를 맞았다.

김일병씨와 그의 아내 박숙자(88)씨. 최지원 기자
그는 “장진호는 일제시대 때 수력발전을 하려고 만든 인공 호수인데, 발전소 2기는 우리가 점령하고 1기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갑자기 중공군이 탱크를 앞세워서 사방으로 몰려드는 판에 혼비백산하고 퇴각했지”라며 “후퇴하면서 도랑과 폭포에 떨어져서 많이 죽었어. 가까스로 흥남부두에 도착하니 피난민 행렬이 몰려 있더라고. 한 아낙네가 추위에 얼어죽는 자기 아이를 내팽개치고 태워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봤는데, 참담했지”라고 말했다.

국군이 38선 이남으로 철수한 뒤 김 씨는 설악산과 지리산 등을 오가며 인민군 패잔병과 빨치산을 토벌하는 임무를 1년간 수행했고, 이후 1952년부터 철원 오성산에 배치돼 휴전 협상 전까지 이어진 처절한 고지전을 치뤘다.

김 씨는 “정말 참혹했지. 폭격기랑 포대가 쉴새 없이 쏴댄 탓에 산이 민둥산이 됐는데, 적들은 또 땅굴을 파서 버티더라고. 휴전 직전까지 땅 한 뼘이라도 더 얻겠다고 상부에선 병력을 밀어붙이는 판에 하루에 수백, 수천구씩 시체가 쏟아졌지”라며 “휴전 막바지에 우리 분대원 9명 중 7명이 실종됐어. 겨우 남은 둘이서 개죽음 당하기 싫다고 자해해서 부상으로 실려가려는 생각까지 했어”라고 말했다.

1953년 7월 휴전 뒤에도 김씨는 1958년 명예제대를 했지만, 학업도 기술도 배운 게 없었던 김 씨는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전쟁 직후 받은 화랑무공훈장은 당시 별도 연금이 나오지 않아 철쪼가리에 불과했다. 다행히 울산에 소작거리를 얻어 정착한 뒤 60여년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삶을 회상하며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면서도 함께 해왔던 전우들이 그립다”라며 “전쟁이 나면 결국 동원되는 건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다. 부디 우리 때 같은 전쟁이 없길 기원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