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부활초

문 열면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아이들 물 만나면 되살아나는 부활초 물주듯 아이들에게 어떤 말로 비를 내어줄까

2026-06-28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종이 울린다. 교실에 들어가야 할 시간, 복도를 지난다.

 교실 문 열기 전, 창가에 서서 잠깐 아이들을 쳐다본다. 서서 노는 아이, 칠판 앞에 있는 아이, 보석 십자수에 빠진 아이, 뱅글뱅글 도는 아이, 노트북 만지는 아이, 제각각 자기 스타일로 놀고 있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도 있고 문을 차는 아이도 있지만 어쨌거나 다들 무언가를 하며 교실 안이 소란스럽다. 저 생생함이라니. 시끄럽다는 것은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말 아닌가.

 문을 열면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저 소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질 것이다.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겠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시들어버릴 것이다. 초점 잃은 눈빛, 다문 입술, 굳은 어깨와 숙인 고개. 마음속으로 한숨과 서운함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밀려올 것이다. 준비해 온 것들은 어쩌지. 난 너희들 좋아하는데, 괘씸한 녀석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는다. 이 아이들은 수업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다만 살기 위해서 스스로도 모르게 생존모드를 풀가동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창문 안 생기 넘치는 아이들을 가만 쳐다보는데 과학과 교재 연구를 하다 새롭게 알게 된 식물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회전초, 황량한 사막에서 바람 따라 떼구르르 굴러다니는 바싹 마른 식물 덩어리. 그것은 우리가 식물의 색이라고 흔히 잘 알고 있는 초록색으로 자라다가 가뭄이 오면 가지를 바싹 말리고 뿌리로부터 줄기를 끊어낸다고 한다. 바람을 타고 구르면서 제 씨앗을 사방에 뿌리며 종족을 이어간다고. 참고로 회전초는 특정 식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렇게 말라서 굴러다니는 식물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학교라는 거친 환경, 수업이라는 지독한 가뭄의 시간. 우리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세포를 굳혀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인간 회전초는 아닐까. 그런데 회전초 중에는 바짝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도 물을 만나면 다시 세포를 깨우며 기적처럼 푸르게 살아나는 식물들도 있다고 한다. 그들을 일컬어 ‘부활초’라고 한다. 이름도 멋들어진 ‘예리코의 장미’도 그중 하나다. 이름은 장미지만 장미와는 전혀 상관없이 푸른 날개를 가진 식물이다. 어떤 것은 100년도 넘게 죽은 듯이 있다가 비를 맞거나 물을 만나면 초록의 날개를 펼치기도 한다고.

 누구나 제 몫의 시간을 살아내면서 수많은 가뭄의 시간을 만난다. 죽은 듯이 숨죽여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야 하는 날들, 언제 올지 모르는 물의 시간을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날들, 지독하게 목마른 날들 말이다. 초록의 생을 잠깐 멈추더라도 다시 활짝 날개를 펼 시간을 위해 기꺼이 바싹 말라 있을 수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비를 내어줄 수 있을까.

 길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교실 문을 연다. 하나둘씩 돌돌 감겨가는 아이들을 향해 오늘은 조금 더 큰소리로 인사한다. 여섯 명의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 힘주어 부른다.

 "아이들, 사막에 가 본 적 있어? 선생님이 사막에 대해 공부하다가 알게 됐는데 말이야. 세상에나 이런 식물이 있다더라"

 다행히 귀는 닫을 수 없으니 이미 반쯤 뿌리를 끊어낸 아이들도 아마 듣고 있을 것이다. 말라가는 풀들 열심히 응원하는 내 입에서 퐁퐁 솟고 있는 물소리를 말이다.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