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사라진 시대

스마트폰에 밀려나 독서율 최저치 종이책은 사고력·집중력 키우는 힘 공동체 모두 책 읽는 사회 돌아갈 때

2026-07-01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북구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장
정영혜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북구어린이·사회복지급식관리지원센터장

 손에 책을 들고 조용히 독서에 몰두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한때 기차와 지하철, 버스 안에서는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출근길 직장인은 신문과 소설책을 펼쳤고, 학생들은 교과서와 문학작품을 읽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교통 안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고 동네 서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정도를 의미하는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로 1994년 독서실태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년 동안 읽은 책의 수는 평균 2.4권으로 그 중 종이책이 1.3권, 전자책과 오디오북이 1.1권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의 사고방식과 정보 소비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행히 그 중 20대의 독서율은 전자책과 웹소설, 온라인 독서 플랫폼 이용 증가로 인해 약간의 상승세를 보였다.

 과거 자신을 소개하는 이력서를 작성할 때 취미를 기록하는 부분에 흔히 '독서', 책읽기'라고 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독서라고 쓰기에는 무색하게 우리의 독서는 더 이상 취미 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흡한 수준이다.

 독서는 인간의 사고력과 감수성, 그리고 사회적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강력한 도구다. 영상은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지만 독서는 스스로 문장을 해석하고 상상하며 사고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결하고 추론한다. 이렇듯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키우게 된다. 특히 문학을 통해 소설 속 인물의 고통과 기쁨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도 생긴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갈등과 대립 역시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감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또한 독서는 집중력을 회복시킨다. 스마트폰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정보의 과잉이다. 짧고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긴 글을 읽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책으로 몇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귀찮아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깊이 있는 사고는 긴 시간 집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독서는 이러한 집중력과 사고의 힘을 키워준다.

 젊은 층에서 전자책 이용이 증가하면서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독서를 지속하려는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일부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전자책과 종이책의 비교가치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매체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고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의 독서형태도 휴대성과 접근성이 뛰어난 전자책이 종이책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자책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고 방대한 양의 책을 저장할 수 있어 디지털 시대에 효율적인 독서 방식임은 분명하다.

 요즘은 대학교재를 만드는 출판업계도 전자책으로 판로를 확장하여 운영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고 수업 중에 전자책을 활용하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전자책이냐 종이책이냐가 아니라 책을 향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독서의 단계에서 전자책을 활용해 독서에 쉽게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전자책으로는 종이책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느낌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 손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감,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끝까지 함께 끼워져 있는 자신만의 책갈피와 종이 인쇄 특유의 냄새는 책 읽는 동안 색다른 안정감과 힐링으로 마음의 충전제 역할을 한다.

 특히 종이책은 스마트폰처럼 알림이 뜨거나 다른 콘텐츠로 쉽게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다. 종이책 독서가 전자기기를 통한 읽기보다 내용 기억과 이해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있다. 화면을 통한 읽기는 빠른 훑어보기에 익숙해지는 반면 종이책은 문장의 흐름과 구조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을 때 우리는 페이지의 위치와 두께까지 공간적으로 기억하게 되는데, 이것이 이해와 기억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종이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데 있다. 오래된 책에는 그 시절의 메모와 밑줄, 책갈피를 끼워둔 중요한 페이지가 남아 책 읽은 이의 생각과 고민, 성장의 시간을 담고 있다. 30년 전 읽었던 책을 책장에 그대로 간직하는 것도 나의 이력을 남기고 싶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독서 문화의 쇠퇴는 단순히 출판 시장의 위축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력과 문화 수준의 약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쉽고 자극적인 정보와 짧은 콘텐츠만 소비하는 문화 속에서는 긴 호흡의 토론과 성찰도 어려워진다.

 독서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는 다시 책 읽는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기보다 어른들이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최신 시설로 지어지는 도서관은 편의시설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화 공간이자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독서문화 확산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한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다시 일상 속에서 들려오는 사회야말로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는 모습이 아닐까. 스마트폰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고 종이책 한 권을 펼치는 일, 그것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회복하는 작은 실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