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제대’하고 ‘졸업’하지 못하는 사회

군대·대학 간판, 내 인생 평생 꼬리표 타인 평가 그릇된 고정관념 삼기 일쑤 순수하게 바라봐야 편견에서 벗어나

2026-07-02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월드컵 축구 기간 중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를 비하하는 일이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뭉쳐서 가볍게 몸을 푸는 달리기를 하는데 팀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조금 떨어져 뛰는 것을 두고 군대에서의 간부처럼 행동한다고 기자는 본 듯하다. 그리고 국위를 선양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마친 손흥민 선수를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단 그 기자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군 복무를 마쳤지만 제대하지 못하고, 이와 유사하게 대학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았지만 여전히 졸업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군은 제대하고 대학은 졸업한다. 제대(除隊)와 졸업(卒業)이란 글자를 보면, 제(除)와 졸(卒)은 군대를 걷어내고 대학에서의 일을 마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를 쉬 허락하지 않는다. 군 제대 후, 대학 졸업 후에도 군대에 고생한 일과 어떤 대학에 다녔는지 기록은 평생 떨쳐내기 힘들고 때론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느낄 정도이다. 우리는 일이 끝난 다음에도 제(除)하고 졸(卒)하지 못한다.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말하면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평화를 어떻게 아냐는 핀잔을 듣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반박하기 힘들다.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당시 일부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전쟁을 겪지 않아 저런다고 말했었다. 그때의 난감함이 지금 시대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군대에서의 고생이 자기 정체성의 전부인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오죽 내세울 게 없으면 군 복무 시절을 평생 얘기하겠는가. 그들은 아직 군에서 제대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학도 비슷하다. 평생 어느 대학 나왔는지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으로 온전히 일하지 못한다. 잊을 만하면 대학 동기 찾고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동문에 의존한다. 일류대학 졸업이 우리 사회 사물의 원칙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제대하지 못하는 자들과 비슷하게 평생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다. 대학의 경우, 어찌 보면 군대보다 더 집요하다. 특정 대학 특권 못지않게 일류 아닌 대학, 지방대학 편견은 차별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다.

  비단 군대와 대학뿐만이 아니다. 물론 군대를 제대한 모든 남자, 모든 대학 졸업자가 그렇다는 얘기가 아님은 당연하다. 군대와 대학 메타포는 꽤 많다. 그중 하나가 ‘강남’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면 강남 지역에 자신의 집을 산 것이다. 집은 그냥 집이기에 그곳에서 잘 살면 된다. 그런데 강남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은 아파트 이상을 자신이 성취했다고 믿게 되는 듯하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강남 아파트 장만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 때문이다. 비싼 아파트를 마련했고 부러움을 받는 것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자금 계획을 짜서 장만한 집에서 살면 되는데 유독 이 지역만은 그냥 집에서 살기 어렵게 우리 사회가 만드는 듯하다.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자크 라캉이란 프랑스 철학자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제대 못 하는 군대, 졸업하지 못하는 대학, 편히 살지 못하는 강남의 문제를 다루어봤으면 한다.

  그는 이런 문제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조언을 남겼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세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며 ‘거세(去勢)’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사물의 고정관념과 정답을 갖는 원칙이 되어버리는 관습에 대해 저항하는 차원의 거세란 점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우리를 지배하는 언어 속 편견, 즉 ‘거세(去勢)’란 단어의 ‘세(勢)’를 뜻한다. ‘거세(去勢)’란 단어에서의 ‘거(去)’는 군대와 대학에서 다룬 제(除)와 졸(卒)이다.

  라캉은 이렇듯 우리를 관념적으로, 문화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언어 속 편견을 거세란 방법으로 깨지 못하면 언어가 갖는 편견의 힘 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한다. 군대, 대학, 강남의 예에서 살펴본 바로 그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진지하고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사건이 지닌 편견과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의 사건만으로 가능하진 않겠지만 이번 손흥민 선수의 일로 우리를 속박하는 아버지의 이름인 ‘세(勢)’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조재원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