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어쩌다 스타벅스는 멸칭의 상징이 되었나

둘로 갈라진 우리 사회 자화상 배재고 사태 극단적으로 표출 한발 물러나 차분하게 살펴야

2026-07-05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청와대가 배재고 사태에 개입했다.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의 이병태 교수가 ‘5·18’을 성역화 한다고 비판하자 옐로카드를 꺼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달 29일 고교야구가 열린 광주에서 배재고 야구선수 일부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쳐 논란이 됐다. 이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배재고 야구부에 출전정지 6개월을 통보하면서 사건이 전국적인 뉴스가 됐다. 징계조치가 알려지자 "애들의 앞길을 막아야 되겠냐" 등의 비판이 이어졌고 야구부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가 광주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기로 했다.

 배재고 교문앞이 극우와 극좌, 진보와 보수의 조화와 화환으로 행렬을 이루자 보수의 쓴소리를 자처하던 이병태 부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 "고등학교 야구 라이벌전에서 스타벅스 논란을 경쟁팀 조롱에 활용했다는 학생들의 일탈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며 "역사의 성역화로 어린 학생들의 장난에 가까운 일탈도 수용이 안 되고 어른들의 ‘정치’가 됐다"고 일갈했다.

 청와대 직속 인사가 5·18 문제에 개입하자 청와대는 수석대변인 이름으로 공개 경고장을 보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이병철 부위원장이 개인적 의견을 게시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엄중히 경고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병태 부위원장과 입장이 완전히 다른 인사의 개입도 이어졌다. 역사강사 최태성이다. 최태성도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사태에 개입을 선언했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 학문의 서막을 연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이 학교가 내세운 것은 섬김이었다"라는 글과 함께 과거 배재학당 사진을 공유했다. 그는 "배재학당은 조롱과 혐오가 아닌 존중과 사랑으로 시작된 학교"라며 "아펜젤러 선생님이 많이 슬퍼하실 듯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배재고는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설립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모태로 하는 자율형 사립고다. 지금 벌어지는 일부 학생의 조롱성 구호가 광주와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당연하다. 그러나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은 사실관계를 따져 냉정하게 처리해야한다. 일부 비평가나 셀럽, 혹은 정치세력이 개입해 마녀사냥식으로 사안을 몰아가서는 안되는 일이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스타벅스 가자"는 말은 입밖으로 나온 순간 괴물로 변했다. 광주를 넘어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이 말은 ‘5·18 민주화운동 비하’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둔갑했고 역사를 모르는 무뇌아이자 극우일베로 몰리면서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라는 사형선고로 이어졌다.

 사태의 파장은 광주 야구경기장을 떠나 서울 배재고 정문까지 점령했다. 배재고 교문 앞은 졸지에 수십개의 근조화환과 이를 반박하는 화환까지 늘어섰다. 흰색 리본의 조화에는 ‘극우 세뇌개를 박멸하자’, ‘쓰레기 양성 교육 그만해라’ 등 비난성 문구가 적혔고 화환에는 ‘배운 배재고가 무시하자’, ‘애들아 기죽지마라’ 등 응원성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필자는 광주일고와 배재고의 야구 경기중 벌어진 조롱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고 사태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 학교 앞에 조화와 화한을 늘어놓는 기성세대의 추태를 그냥 보고 있을 생각도 없다. 배재고 야구선수들이 광주일고와 경기를 앞두고 콜드게임승을 예상하고 조롱 응원을 준비했는지, 우발적 조롱이 전체 목소리로 번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학교와 교육당국이 해당 선수와 지도자를 상대로 조사를 해보면 가려질 일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 사건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다. 불과 얼마전 우리 사회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후로 스타벅스 사태를 겪었다. 지방선거와 기업주 멸공논란까지 소환된 스타벅스 사태는 초유의 관주도 불매운동 시비로 번졌다가 스타벅스 전매장 역사교육이라는 보여주기식 쇼로 마무리됐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터진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가자"는 배재학당 전체를 역사적 탕아로 만드는 마녀사냥으로 번지는 중이다.

 여기에 역사 만물박사로 스타강사 반열에 오른 최태성의 발언은 한참 더 나갔다. 조롱과 혐오가 아닌 존중과 사랑으로 시작된 아펜젤러의 희생이 배재의 정신이라는 최태성의 발언은 일견 묵직해 보인다. 120년전 선교를 위해 이 땅을 밟은 아펜젤러는 근대신 교육기관을 설립한 공이 가장 앞줄에 이름을 올리지만 사실은 그의 죽음이 더 숭고하다. 44살의 선교사 아펜젤러는 제물포에서 목포로 가던 배에 탔다가 침몰하는 배에서 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어떤 소중한 사명보다 자신과 아무 인연이 없던 어린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120년 전 배재학당 설립의 큰 뜻을 이야기 하면서 오늘의 몇몇 학생들이 저지런 불편한 조롱을 모든 배재인들의 역사의식으로 매도하는 최태성의 지적은 과했다. 차라리 해방 직후 친일청산 실패부터 한국전쟁 전후의 극심한 좌우논쟁, 오늘로 이어진 둘로 갈라진 사회의 불편한 시선이 스타벅스 사태와 조롱까지 번졌다고 지적하는게 옳았다. 그 지적의 끝자리에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게 만들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과 우리 사회의 과잉대응을 지적하고 주도한 학생들을 꾸짖고 용서를 구하라고 죽비를 드는게 적절했다고 본다.

   벌떼처럼 일어나 조화와 화환에 조롱의 문구를 적고 선수 생명을 뺏는 징계와 손가락질로 짖밟으려는 극우와 극좌의 멸칭은 광기다. 그 광기에서 한발쯤 물러나 차분하게 사태를 살피고 문제를 직시하는 태도가 기성세대의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광기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멸칭의 찬반 양측에 줄을 세우며 둘로 갈라진 사회의 극명한 대립을 더 적나라하게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오늘부터라도 점심 식사후 "스타벅스 갑시다"라는 말이 금기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