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카메라 앞의 행정, 울산은 ‘참교육’의 무대가 아니다
김상욱 시장 인수위 업무보고 생중계 논란 시민에 공개 투명 시정 운영 취지에는 공감 카메라 앞 질책보다 절차·검증이 우선돼야
“제가 뭐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김상욱 울산시장의 인수위 업무보고 생중계에서 반복된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웃음으로 마무리된 발언이 그 앞의 질책과 압박까지 가볍게 하지는 않는다.
“그건 협박처럼 들린다”, “내가 변호사라서 그건 잘 안다”는 식으로 보고 공무원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붙인 말이 “뭐라 하려는 것은 아니다”였다. 그 말은 겸손이 아니라 뒤통수치기로 보였다. 칼을 찌르고 나서 “아프게 하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 시장은 ‘시민이 주인 되는 민주도시 울산’을 내걸고 있다. 취임식에서도, 울산 시내버스에도 그 구호를 신속히 내걸었다. 시민에게 행정을 공개하고, 시정을 투명하게 운영하겠다는 취지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방정부가 시민 앞에 더 많은 자료를 내놓고, 예산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더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공개’와 ‘공개 망신 주기’는 전혀 다르다.
투명 행정은 회의 자료와 예산 내역, 사업의 근거와 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시민·의회·전문가가 검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면 카메라를 켜 놓고 특정 공무원의 표정과 말투, 순간의 답변을 전국의 시청자 앞에 내놓은 채 질책하는 것은 행정의 투명성이 아니라 권력의 연출이다.
회의실은 정책을 가다듬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유튜브 생중계가 시작되는 순간, 회의실은 시장의 정의감과 강단을 과시하는 스튜디오로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와 정부 업무보고 생중계 역시 공개 질책 장면이 정치적 콘텐츠로 소비됐다.
카메라 앞에서 새 시장에게 보고해야 할 공무원은 며칠 전부터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법령, 예산, 중앙정부 협의, 계약, 민원, 현장 여건뿐 아니라 어떤 표정과 어떤 말투로 답해야 하는지까지 고민하기 마련이다. 보고하는 사람의 한마디가 잘려 나가 ‘참교육 영상’으로 유통되고, 댓글에서 비난과 의혹 제기가 쏟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누가 솔직하게 말하겠는가.
생중계 이후 일부 공무원은 가족과 지인까지 볼 수 있는 영상 속에서 인신공격과 협박성 반응에 노출되고 있다. 답변에 따라 다음 날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적폐’, ‘담합’, ‘세금 도둑’으로 몰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조직은 침묵하게 된다. 보고서는 더 안전한 문장으로 바뀌고, 현장의 불편한 진실은 시장에게 올라가지 않으며, 행정의 톱니바퀴는 멈추게 된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구호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울산시 공무원 역시 울산시민이다. 울산에서 살고, 자녀를 키우며, 세금을 내고, 이 도시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이다. 물론 부실 행정, 특혜, 비리, 담합이 있다면 철저히 감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에는 절차가 있고, 징계에는 증거가 있으며, 처벌에는 법적 기준이 있다. 시장이 카메라 앞에서 먼저 유죄의 분위기를 만들고, 군중이 댓글로 돌 던지게 하는 방식은 정의가 아니라 권력의 정치 놀음에 가깝다.
지도자가 전임 행정의 사업과 담당 공무원을 검증 이전에 ‘기득권’, ‘담합’, ‘악’의 이미지로 묶고, 시민의 분노를 끌어내는 장면을 반복할 때, 행정은 정책 토론이 아니라 도덕재판, 인민재판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권력은 공개를 통해 ‘감시’받아야지, 공개를 무기로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문화대혁명 홍위병의 광기와 무엇이 다른가?
인수위 보고에서 김 시장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는 트램 사업은 1993년부터 검토됐고, 김두겸 시장 전임인 민주당 출신 송철호 시장이 2019년 도입을 결정했다. 어느 한 시장이 즉흥적으로 만든 사업이 아니다. 정부 타당성 재조사와 중앙투자심사, 국토교통부 기본계획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친 사업이다. 물론 시민 불편, 공사비, 교통 혼잡, 수요 예측, 재정 부담, 시내버스 체계와의 충돌은 당연히 다시 따져야 한다. 시내버스 노선 개편도 시민이 겪은 불편을 세밀하게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재검토와 전면 부정은 다르다. “전임 시장이 추진했으니 의심스럽다”는 식의 정치적 인상 비평만으로는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 산업도시 울산의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기세가 아니라 판단력이고, 호통이 아니라 설득이며, 생중계의 통쾌함이 아니라 행정의 무게다. 전임 행정의 오류는 바로잡되, 모든 것을 악으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공무원에게는 책임을 묻되, 인격과 전문성은 존중해야 한다. 지금 울산에 필요한 것은 웃으며 칼을 드는 시장이 아니라, 차분하게 사실을 따지고 끝까지 설득하며 책임 있게 결론을 내리는 시장이다.
문호철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 수석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