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울산 대표축제 넘어 글로벌 다문화도시 브랜드로
[창간 특집]울산 대표축제 변곡점 ‘처용문화제’ 부활하나
2026-07-19 고은정 기자
울산 대표축제의 역사는 도시 정체성 변화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울산공업축제는 1967년 시작돼 산업수도 울산의 성장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공업’이라는 이름이 공해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 속에 변화가 이어졌고, 1995년 제29회 울산공업축제부터는 ‘처용문화제’로 명칭을 바꾸며 울산의 역사성과 인문학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처용문화제는 남구 개운포와 처용암 등 처용설화의 발상지로 알려진 울산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50여 년간 이어져 왔다. 고 이어령 선생이 제안한 ‘처용’이라는 문화 코드는 산업도시 울산에 정신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시민 참여 부족, 콘텐츠 한계, 정체성 논란에 부딪히며 위상은 약화됐고, 2023년부터 처용문화제는 중단됐다.
이후 울산공업축제가 대표축제로 부활했지만, 논란은 이어졌다. 관, 대기업 중심의 축제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울산의 오랜 문화적 상징인 처용을 대표축제에서 삭제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축제의 간판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울산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축제의 정체성을 세우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왔다.
처용문화제의 콘텐츠 확장을 위해 함께 열렸던 월드뮤직페스티벌도 한계를 드러냈다. 2007년부터 처용문화제와 함께 열렸지만, 행사 성격이 처용문화제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논란과 예산 투입에 따른 ‘주객전도’ 지적 끝에 2019년 폐지됐다. 처용문화제와 함께 이어져 온 ‘울산아시아퍼시픽뮤직미팅’(에이팜)도 국제뮤직마켓을 표방했지만 시민 체감도는 낮아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처용을 놓친 사이 커진 ‘주도권’ 우려
처용문화제가 사라진 사이, 울산 안팎에서는 처용 콘텐츠의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2023년 경주에서 ‘경주, 처용무의 역사성’을 주제로 학술 포럼이 열리자 지역 문화계에서는 “울산에서 버린 처용축제를 경주에서 살리려는 것 아니냐”, “뺏기기 전에 찾아와야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처용설화가 신라 왕경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경주의 학술적 접근 자체를 배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처용이 처음 등장한 개운포를 품은 울산이 정작 발상지로서의 역사성과 문화 자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자성은 피하기 어렵다.
처용무는 국가무형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에는 용왕이 처용 등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울산 개운포에서 춤을 췄다는 기록이 전한다. 울산에는 지금도 개운포, 처용암, 처용리, 임금산, 망해사 등 처용 관련 지명과 흔적이 남아 있지만, 울산은 ‘처용무 발상지’로서의 평가와 전승 기반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지역 전승 기반도 위기를 맞았다. 남구문화원 내 처용무전수학교와 신정고등학교 처용무전수반은 과거 처용문화제 등에 참여했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문을 닫았다. 처용문화제마저 중단되면서 처용은 울산시민의 삶과 축제 현장에서 점점 멀어졌다.
다행히 울산처용무전승회 소속 5명이 국가무형유산 제39호 처용무 이수자로 배출됐고, 이후 보존회와 전승회가 통합돼 처용무보존회 울산지부가 창립되는 등 전승 기반 회복의 실마리는 마련됐다. 그러나 시민적 확산과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도 처용문화제 부활을 계기로 울산의 정신문화가 다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우춘 전 처용문화제 추진위원장은 “처용은 울산시민들과 오랜 세월 함께해 온 고유의 역사·문화·관광 콘텐츠”라며 “처용문화제가 폐지돼 천년의 역사를 가진 처용 정신을 되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이강민 미학연구소 봄 대표는 지난해 11월 열린 ㈔처용무보존회 울산지부 학술제에서 “울산은 50여 년간 ‘처용의례’와 ‘처용문화제’를 지속해 왔던 도시로, 이는 처용이 궁중정재 처용무뿐만 아니라 이미 동시대 울산에서 처용문화로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처용을 특정 종교적 편견이나 서구 중심 문화 논리에 의해 폄하하거나 삭제돼선 안 된다. 처용정신과 처용문화에 대한 인식 확산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선 9기, ‘웰컴 처용문화제’ 준비
처용문화제 부활 논의는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구체화되고 있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취임 직전 열린 울산시민행동 주최 초청 강연회 ‘문화예술도시 울산’에서 축제 정책의 재정비 필요성을 언급하며 “올해는 ‘아듀 공업축제, 웰컴 처용문화제’처럼 처용문화제를 받아들일 준비 단계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시민들이 불편하게 길을 막고 하는 퍼레이드는 반대한다”며 “지금까지 관 주도였다면 이제는 시민 주도 축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단계에서도 처용문화제 부활은 시민사회와 문화예술계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 제시됐다.
기본 구상은 ‘처용문화제’라는 그릇 안에 울산의 전통 70%, 현재 15%, 미래 15%를 담아내는 복합 문화축제다. 처용무만 추는 축제가 아니라 태화루, 학성공원, 경상좌수영, 언양읍성 등 울산 곳곳의 역사와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겠다는 방향이다.
#처용, 1,000년 전 다문화 도시의 상징
이제 부활하는 처용문화제는 단순한 전통 재현이나 과거 축제의 복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핵심은 처용을 1,000년 전 한반도와 세계가 만났던 ‘글로벌 다문화 사회’의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데 있다.
울산 남구 황성동 일대 개운포는 선사시대부터 해양문화의 근거지였고, 신라시대에는 서라벌의 외항으로 국제교류의 창구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은 처용이라는 이질적 존재가 신라 문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토양이 됐다.
처용의 상징성도 새롭게 읽어야 한다. 이어령 선생은 처용을 ‘치유의 코드’로 정의했다. 역신조차 춤과 노래로 달래어 물리친 처용의 정신은 낯선 존재를 배척하지 않고 예술로 승화해 조화를 이루는 관용과 포용의 상징이다.
#다문화 시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로
울산은 산업도시를 넘어 글로벌 다문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항만 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시민들이 지역사회 곳곳에서 울산시민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울산의 다문화 관련 행사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지역 대표축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처용문화제가 다시 열린다면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울산에 사는 다양한 국적의 시민들이 축제의 관람객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 전통 처용무와 현대적 거리예술, 월드뮤직, 이주민 공동체의 음식과 공연, 청년 예술가의 창작 콘텐츠가 어우러지는 미래형 도시축제로 나아가야 한다.
산업화 속에 잊힌 역사 공간을 회복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산업공단과 뒤엉킨 처용암, 개운포 사적지, 세죽마을과 황성동 일대의 역사성을 축제 콘텐츠와 연결하고, 처용테마파크나 역사문화 탐방길에 처용문화박물관이나 처용무 전수관 등을 만들어 연계하는 장기적 구상도 검토할 만하다.
#간판 교체 아닌 도시 브랜드 전략으로
울산의 대표축제 논쟁은 오랫동안 반복돼 왔다. 고래축제, 옹기축제, 쇠부리축제, 마두희축제 등 구·군별 특화축제는 성장했지만, 울산 전체를 설명하는 단일한 축제 브랜드는 여전히 흔들렸다.
처용문화제의 부활은 단발성 선언이 아니라 축적의 전략이어야 한다. 문화예술계와 역사학계, 다문화 공동체, 청년 기획자, 관광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시 차원의 축제추진위원회가 필요하다. 축제의 명칭과 형식만 바꾸는 데 그친다면 대표축제 논쟁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국, 처용문화제의 부활은 울산이 어떤 도시로 기억될 것인가의 문제다. 산업수도 울산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울산은 산업의 성취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1,000년 전 개운포에서 세계와 만났던 도시, 낯선 존재를 배척하지 않고 춤과 노래로 품었던 도시,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도시라는 서사가 필요하다.
처용문화제는 울산이 가진 융합의 전통과 글로벌 DNA를 깨우는 촉매제가 돼야 한다. 1,000년 전 개운포가 그러했듯, 21세기 울산 역시 세계인이 모여들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글로벌 다문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그 길의 출발점에 다시 처용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