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질문하는 도시가 미래를 만든다

무엇을 물을까? AI시대 핵심 과제 타인 생각 존중하며 논리적 말하기 비판적 사고력 함양 질문 능력 ‘쑥’ 미래 교육 청사진 토론 교육 ‘시급’

2026-07-22     이중희 ㈔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총재

■지방자치단체가 청소년 토론축제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

이중희 ㈔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총재

 도시는 도로를 넓힌다고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높은 건물이 도시의 경쟁력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경쟁력은 그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얼마나 품격 있게 대화하며, 얼마나 성숙하게 타인과 협력하는가에서 결정된다. 결국 도시의 미래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의 사고력 위에 세워진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교육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얼마나 많이 아는가'를 묻는 교육에는 익숙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묻는 교육에는 인색하다.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정보를 찾아주고 답을 제시하는 시대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더욱 요구되는 능력은 지식을 암기하는 힘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힘이다. AI는 답을 줄 수 있지만,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토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토론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경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며, 자신의 주장을 검증하고 타인의 논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연습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경청하는 과정이다. 토론의 본질은 승패가 아니라 성장이다.

 오늘날 세계 교육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OECD가 미래 핵심역량으로 제시하는 비판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협업 능력, 창의적 문제 해결력은 모두 토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능력이다. 

 핀란드는 토론 중심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화했고, 싱가포르는 토론과 발표를 국가 교육의 핵심 역량으로 발전시켰다. 영국의 의회식 토론교육은 민주 시민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나라들은 이미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생각하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지방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육은 교육청만의 일이 아니다. 학교만의 책임도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지역의 미래 인재를 키우는 중요한 교육 주체다. 

 지방정부가 청소년을 위해 투자하는 가장 가치 있는 예산은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생각할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 청소년 토론축제는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나누는 경험은 교과서 몇 페이지를 더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기억된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인격은 성숙해진다. 

 토론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발표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는 시민의식을 체득하게 하는 민주주의 교육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학생들은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과 교육 기회를 쉽게 접한다. 반면 지방의 많은 학생들은 토론교육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교육의 기회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다. 지방정부가 토론축제를 직접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에게나 생각을 표현할 무대를 제공하는 것은 교육복지이며, 미래에 대한 공공투자다.

 울산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울산 남구에서 시작된 청소년 독서토론축제가 해를 거듭하며 성장했고, 교육계와 지역사회의 관심 속에서 하나의 교육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시도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정책은 거창한 선언보다 먼저 실천하는 한 지역에서 시작된다. 작은 씨앗 하나가 숲을 만들 듯, 한 도시의 교육 실험은 전국 교육정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토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경청이 부족하다. 자신의 의견은 크게 말하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대화보다 비난이, 설득보다 단정이, 이해보다 편 가르기가 더 빠르게 확산된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토론 기술보다 토론의 품격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 논리로 설득하는 자세,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함은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다. 직접 경험해야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다.

 제9대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은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는 눈에 보이는 시설 투자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고력에도 투자해야 한다. 문화도시를 말하기 전에 생각하는 도시를 만들고, 교육도시를 말하기 전에 질문하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청소년 토론축제가 될 수 있다.

 청소년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한 사람의 생각이 자란다. 그러나 백 명의 청소년이 한 권의 책을 함께 토론하면 백 개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질문하는 시민이 많은 도시일수록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더 창의적인 경제를 만들며, 더 성숙한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토론은 그 백년을 지탱하는 뿌리다. 지방정부가 그 뿌리를 심지 않는다면 미래는 결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응답할 차례다. 청소년들에게 생각을 말할 무대를 열어주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토론축제는 하루의 행사가 아니라 한 도시의 철학이며,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교육혁신의 시작이다.

  대한민국의 내일은 더 많은 건물을 세우는 도시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품은 청소년을 키우는 도시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중희 ㈔한국청소년문화진흥협회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