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울산 내려가요, 연꽃 보러요!

일년 중 한여름 딱 한 달, 하루 100명 허락 회야댐 생태습지 ‘비밀의 정원’ 탐방 인기 초록 연잎 물결 속 청정한 연꽃 자태 ‘힐링’

2026-08-03     김학찬 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
김학찬 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

  휴대폰 화면에 반가운 이름이 떴다. 수원에 사는 해설사 친구다. “선생님, 저 울산 내려가요, 연꽃 보러요!” 목소리가 살짝 들떴다. “3년째 도전인데, 이번엔 붙었어요! 하하하하!” 회야댐 연꽃정원 탐방 예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몇 해를 별러온 일이니 기쁘고 설렐 만했다.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와, 그 어려운 걸! 대단해요, 대단해!”

  울산에 사는 나보다 수원의 그가 탐방에 더 열심히 도전해왔다는 사실이 고맙고 신기했다. 연꽃의 풍광이나 연밭의 크기만 따지자면 전국에 이름난 명소가 적지 않을 텐데, 무엇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울산의 나조차 두 차례 다녀온 것이 전부인 곳을.

  회야댐 연꽃정원은 일 년에 딱 한 달만 탐방객을 받는다. 평소엔 정원을 둘러싼 습지 전체가 울산의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출입을 엄격히 제한한다. 그러다 습지의 연꽃이 절정을 이루는 한여름, 잠시 빗장을 푼다. 올해는 7월 21일부터 8월 14일까지 4주간이다. 하루 탐방 인원은 100명. 습지 입구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받아야 정원으로 들어설 수 있다. 누구나 도전할 순 있지만 허락된 소수에게만 속살을 여는 곳. 그래서 끌림이 더 강렬한 모양이다.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통천리. 이곳은 애초 꽃을 감상하려 만든 관광 정원이 아니다. 옛 통천마을 주민 700여 명이 회야강 물줄기에 기대어 농사짓고 살던 땅이다. 1982년 회야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그 자리에 회야호로 흘러드는 오염원을 자연의 힘으로 정화하기 위해 생태습지를 만들기로 했다. 2002년 착수한 사업은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7년이 걸렸다. 실향의 아픔을 품은 논밭과 주변 웅덩이가 연과 갈대, 부들 등 갖가지 수생식물이 살아가는 생태습지로 다시 태어났다.

  습지는 오래지 않아 진가를 발휘했다. 물길이 습지로 흘러들면 갈대와 부들, 연꽃의 줄기와 잎이 물살을 늦추고, 떠내려온 흙과 부유물질을 바닥에 가라앉힌다. 물살이 잦아든 사이 줄기와 뿌리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오염물질을 흡착하고 분해한다. 습지가 커다란 침전조와 천연 여과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조사에서 이 습지를 거치며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 46.6%, 총질소(T-N)가 43.2%, 총인(T-P)이 27.3% 줄어들었다. 그렇게 맑아진 물은 다시 고도정수처리를 거쳐 울산의 식수가 된다.

  회야댐 생태습지는 사람이 자연을 되살리고, 자연이 사람의 물을 지켜내는 순환과 공존의 현장이다. 허락된 탐방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습지가 시야를 압도한다. 총 17만3,000㎡, 축구장 24개 규모다. 이 거대한 습지를 감싸고 회야강 물줄기가 휘돌아 나간다.

  그 한가운데 5만㎡가 연꽃 군락이다. 데크 탐방로를 따라 들어서면 커다란 연잎이 초록빛 물결처럼 일렁인다. 그 사이로 단아한 자태의 홍련과 백련이 은은한 향기를 흩뿌리며 발길을 붙든다. 습지의 백미는 단연 연꽃정원이다. 습지의 연꽃은 이른 새벽부터 꽃잎을 열고 한낮이 지나면 서서히 오므려 닫는다. 활짝 핀 연꽃을 보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한다. 연꽃정원 탐방을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꽃이 서늘한 새벽부터 꽃잎을 여는 것은 개화기의 독특한 수분(受粉) 전략이다. 이 시기 연꽃은 꽃턱에서 스스로 열을 내 꽃 속을 따뜻하게 덥힌다. 향기를 퍼트리고 곤충을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다. 꽃잎이 닫히면 딱정벌레가 그 속에 갇혀 밤을 보내기도 한다. 고고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생존의 안간힘이다.

  연꽃은 예부터 고결함의 상징으로 비유되곤 했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꽃으로 받든다.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꽃을 피워내는 그 맑음을 찬양해서다. 그 맑음은 어떻게 비롯되고 어떻게 지켜내는가. 연꽃의 뿌리는 딛고 선 진흙을 피하지 않는다. 깨끗한 물가를 좇아 그 자리를 옮기지도 않는다. 수면 위의 연잎은 흙탕물을 튕겨내며 스스로를 지킨다. 물 아래에선 줄기와 뿌리가 제 몸을 던져 습지의 물을 맑힌다. 저마다의 묵묵한 분투가 있기에 물 위의 꽃은 더욱 맑다.

  이번 여름, 나는 친구와 함께 탐방객으로 걷는다. 회야댐 생태습지는 짧게 열리지만 추억은 오래 스밀 것이다. 그날이 기다려진다. 김학찬 숲해설가·자연환경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