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별을 보며

2026-08-04     조정숙 시인
조정숙 시인

 밤인데도 바람 한 점 없이 덥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퍼부었으면 하고 하늘을 올려다봐도 비 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촘촘한 별빛이라도 쏟아지면 눈이라도 시원할 것 같은데 커다란 보름달 밑에 별 하나만 반짝인다. 달 아래 작은 별을 보니 얼마 전 가본 영천 가래실마을이 생각난다.

 가래실마을은 삶이 별이 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밤늦게까지 휘황찬란하게 조명을 밝힌 도시와 달리 빛 오염이 적어서 별이 잘 보이기로 유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사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태어나 살다가 죽은 사람 혹은 마을을 떠나간 사람들, 사는 동안 제대로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지 못했던 평범하고 소소한 개인의 삶과 문화가 별이 되어 전시되어있는 '별별 문화 마을'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큰 벽을 가득 채운 마을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사진부터 눈길을 끈다. 박물관에 걸릴 사진이라고 번듯한 옷을 차려입고 멋을 부리며 찍은 사진들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들녘에 쌓인 따가운 햇살은 짙은 갈색 주름이 되어 별처럼 박혀있다. 아이들처럼 천진한 웃음에는 세월의 흔적이 쌓였다. 별을 이고 별자리를 그리듯 살았더니 한숨이 기쁨이 돼 웃고 있다.

 옆에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의 낡은 돌 사진이 걸려 있다. 지금은 폐교되었지만, 한때 전교생이 팔백여 명에 달했다는 화동국민(초등)학교 학생들의 빛바랜 졸업사진도 보인다. 정미소, 외양간의 누렁소와 청년 회장네 강아지까지도 이곳 박물관에서는 더없이 소중한 기록이다. 그 하나하나가 별이 되어 마을의 자취로 남아 있다.

 꽃상여 타고 떠난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과 어르신들 사진 사이에 먼지 쌓인 빈자리가 내 가족의 부재처럼 안타깝고 가슴 먹먹하다. 교과서에 한 줄 이름과 행적을 남기지 못했다고 그 삶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껏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이런 보통의 삶이다. 서너 평 남짓한 동네 박물관에서 새삼 깨닫는 별의별 삶이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골목, 고요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풍경, 버스 정류장 지붕에는 은빛 풍선이 하늘로 날아갈 듯 달려있다. 개울물 앞에는 어린 왕자 조각상이 까치발로 계단 끝에 서서 별을 따고 있다. 쌀가마가 가득 쌓인 오래된 정미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고 굽은 허리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르신의 '점방'은 누군가에겐 그리운 풍경이고 별이 되는 작품이다.

 담벼락 그림에는 사막여우와 어린 왕자가 나란히 앉아 별구경을 한다. 떨어진 별이 담에 꽂혀 있다. 홀로 사는 할머니 집 담에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려 넣은 벽화 등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하다 보면 별의별 것이 별이 되기도 한다. 별별 문화 마을은 창작 예술품과 벽화가 마을 분위기를 이끄는 예술촌이다.

 어릴 적 저녁이면 어머니가 만들어 준 칼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모깃불 곁으로 모였다.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으며 평상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별천지였다. 수많은 별이 얼굴로 쏟아져 내리면 나는 동생과 은하수, 북두칠성, 북극성의 별자리를 찾으며 별 이름을 불렀다. 저 별은 엄마별, 큰 별은 내별, 작은 별은 동생별 하면서 반짝반짝하는 꿈을 꾸었다. 별똥별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별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고 사랑을 속삭이는 일들은 누구나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가끔 유성이 하늘을 가르면 그 감동은 가슴을 들뜨게 했다. 요즘은 별이 있는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서, 또는 도시의 별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쉽게 포기되고 만다. 공해로 예전의 초롱초롱하던 별빛들은 사라지고 희미해졌지만 어릴 때 보았던 별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하고 사랑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때로는 무언가를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평범한 삶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순간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힘을 얻는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은 볼 수 없지만 세월을 넘어 가버린 동심이 그리운 추억으로 묻어난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만지고 별을 보며 꿈을 키우던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