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980만 찾은 ‘1호 국가정원’…흥행 신화 뒤 숨은 ‘재정 블랙홀’의 경고

[기획_전국 순회형 K-BUGA, 정원도시 울산 미래 열다] ① ‘생태 방어선’을 정원도시 교과서로 바꾼 순천

2026-08-06     강태아 기자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의 아침. 이수화 기자
#도시 팽창을 막은 28만 평의 배수진

2000년대 초반, 순천의 도심 팽창은 세계적 자연유산인 순천만 갯벌과 습지의 턱밑까지 아파트와 상업 건물을 밀어 넣고 있었다. 개발의 칼날 앞에 선 순천시가 내놓은 해법은 뜻밖에도 92만6,000㎡(28만 평)짜리 생태 완충지대(Buffer Zone)였다.

예쁜 공원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물리적으로 막아 습지를 보호하겠다는 배수진은 보존과 개발의 대립을 넘어 ‘생태가 곧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는 역발상으로 이어졌다. 순천은 그렇게 10년 사이 인구가 1만 명 가량 늘며, 지방 소멸 시대에도 중소도시가 ‘생태와 정원’이라는 독점적 콘텐츠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됐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 순천만국가정원의 아침. 이수화 기자
순천만국가정원은 동천강을 사이에 두고 동문과 서문이 스페이스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이수화 기자
#440만에서 980만으로 ‘흥행의 기록’

2013년 440만 명이 다녀간 국내 첫 국제정원박람회를 마친 순천은 2015년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를 만들어냈다.

이 정원 조성 사업을 이끈 최덕림 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은 “정원이라는 항목 자체가 보조금 대상이 아니었는데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는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면 국비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발견했고, 국제정원박람회 유치는 이렇게 예산 확보를 위한 현실적 우회로에서 출발했다”라고 회고했다.

순천의 진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0년 뒤인 2023년 두 번째 박람회(193만㎡, 58만 평)에서 폭발했다. 214일간 980만 명의 관람객을 모았고, 유료화 전략을 강화해 333억 원의 직접 수익을 창출했다.

최덕림 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이 지난달 28일 순천 오천그린광장에서 지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공 노하우와 방향 등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순천만국가정원 식물원에서 연결되는 시크릿 어드벤처로 실내에서 전시관 관람 및 영상 애니메이션 콘텐츠와 디지털 기술이 결합 된 4D 콘텐츠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수화 기자
#6개월짜리 이벤트가 남긴 ‘운영 데이터’

정원박람회 자체는 6개월이면 문을 닫는 단발성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그 운영이 10년 주기로 반복되면서 순천의 정원행정 내부에는 강력한 실전 노하우가 축적됐다.

어느 계절에 어떤 동선이 병목이 돼 관람객 흐름이 마비되는지, 어떤 기획 프로그램이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려 지역 경제에 기여하게 만드는지 같은 정보는 화려한 설계 도면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현장에서 구르고 깨지며 쌓아 올린 ‘운영 데이터’의 힘 이었다.

최 전 총감독은 이 노하우의 핵심을 ‘인력 운용’에서 찾는다. 그는 “순천만 복원 초기 22명이던 전담 조직은 정원 조성 단계에서 60명으로 늘었다”며 “시청 직원 가운데 환경·시설·토목·농업 등 7개 직렬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만 뽑아 한시적을 승진을 미뤄가며 한자리를 지키게 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가 여러 번 강조한 원칙은 ‘보이지 않는 설계’였다. 순천만정원의 배수로, 하수구, 잔디 기반 다짐 공사 등은 모두 눈에 띄지 않지만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다. 곡선 도로 하나를 만들 때도 전문 자동차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고 정원 안내판도 의도적으로 없앴다. 컨테이너 같은 임시 시설물도 계획 단계에서부터 배제했다.

관람 동선 설계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관광 전문가가 아닌 순수 조경·시설 담당 공무원이 설계를 주도하면 ‘관광 마인드’가 빠지기 쉽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은 폐막 이후에도 방치되지 않고 영구적인 상설 유료 입장 체계로 전환됐다.

순천만국가정원 개장 전 아침부터 작업자들이 곳곳에서 꽃과 잔디 등에 물을 주고 있다. 이수화 기자
순천만국가정원 내 네덜란드 정원. 이수화 기자
순천만국가정원 내 이탈리아 정원. 이수화 기자
#콘텐츠의 진화조경을 넘어선 정원

콘텐츠의 진화 역시 정형화된 조경의 틀을 깨부쉈다. 영국 조경가 찰스 젱스가 순천의 지형을 형상화한 ‘호수정원’과 ‘봉화언덕’은 거대한 인파를 공간 공학적으로 분산하는 성과를 거뒀다.

찰스 젱스의 참여는 우연이 아니었다. 영어에 능통한 사서직 공무원을 대외협력팀장으로 발탁했고 이 직원이, 전 세계 정원 디자이너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직접 섭외한 결실이었다.

1.03㎞ 아스팔트 도로를 걷어내고 푸른 잔디길을 깔아 만든 ‘그린아일랜드’와, 홍수 조절지라는 치수 공간을 시민들의 휴식처로 탈바꿈시킨 ‘오천그린광장’은 정원이 도시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최 전 총감독은 오천그린광장 설계에 대해 “사계절 잔디를 심어 광장처럼 쓰게 하면서도, 비가 오면 물이 흐르고 넘치는 경로는 그대로 유지되게 설계했다. 겉으로는 광장이지만 기능은 그대로 저류지다”라고 설명했다.

정원 안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가든스테이’는 정원이 단순한 일회성 시각 소비재가 아니라, 고부가가치 체류형 관광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동·서문을 연결하던 다리를 우주선 모양과 미디어아트로 리모델링한 ‘스페이스 브릿지’와 동천 유람선 ‘정원드림호’는 정원과 디지털, 수변 공간의 유기적 결합을 보여준 야심작이다.

순천만국가정원 개장 전 아침부터 작업자들이 정원 내 꽃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국가정원 내에 숙박을 하며 머무를 수 있는 ‘가든스테이’. 이수화 기자
순천만국가정원의 동문과 서문을 연결하는 스페이스 브릿지 내부는 우주와 물, 순천만을 결합한 미디어아트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울산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과서이자 경고판

그러나 화려한 흥행 성적표 이면에는 관 주도 행정이 가진 명확한 임계점과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초기 순천은 토목·시설·관광 등 7개 직렬의 정예 공무원을 발탁해 한시적으로 이동없는 보직 고정으로 일사불란함을 챙겼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민간의 창의적 개입을 가로막는 관료적 벽이 되기도 했다. 공무원이 모든 기획과 설계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작 정원의 예술적 완성도와 생태적 깊이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민간 전문가나 전문 가드너들의 창의성이 개입할 틈이 구조적으로 막혀버린 것이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박람회가 끝난 뒤 터져 나오는 ‘사후 유지관리비의 압박’이다. 박람회가 끝난 평시에도 수백만 평의 거대한 인공 녹지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순천시의 순수 세금 수십억원과 막대한 행정 인력이 블랙홀처럼 투입되고 있다. 정원 관람 열풍이 한풀 꺾이거나 방문객이 감소하는 순간, 이 거대한 녹지는 도시 재정을 갉아먹는 ‘레거시(유산) 폭탄’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

순천만국가정원 어린이동물원의 홍학. 이수화 기자
#단일 도시의 한계 극복…광역 연계와 전문 거버넌스로의 대전환

단일 중소도시가 국가정원의 막대한 유지비를 홀로 감당하며 연이어 대형 박람회를 개최하는 것은 행정적·재정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에 순천은 새로운 패러다임 대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순천이 10년간 축적한 정원 관리 기술과 컨트롤 타워(허브) 역할을 제공하고, 부지와 기초 인프라 투자는 여수, 광양, 경남 남해안 벨트 도시들이 분담하는 ‘남해안 남중권 광역 상생 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시장 역시 ‘생태를 넘어 경제 도시로’라는 기치 아래 정원 관리를 전담할 ‘순천관광공사’설립을 추진하며, 관료화된 직영 구조를 탈피하고 전문성과 자생력을 갖춘 유연한 민관 거버넌스로의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어 순천만정원이 어떻게 달라질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순천 베끼지 마라”…울산 정원박람회 향한 ‘뼈있는 제언’

최덕림 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이 지난달 28일 순천 오천그린광장에서 지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성공 노하우와 방향 등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현장 인터뷰/최덕림 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

“정원박람회는 단순히 꽃을 심는 잔치가 아니다. 도시의 체질을 바꾸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수단이어야 한다.”

지난달 28일 순천 오천그린광장 잔디밭 위에서 만난 최덕림 전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의 제언은 단호하면서도 명쾌했다. 그는 지자체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로 ‘녹지 부서 중심의 관성적 추진’을 꼽았다. 녹지·조경 부서에만 의존하면 일회성 화훼 식재 행사에 그치기 쉽다는 지적이다. 최 전 감독은 “박람회의 본질은 정원을 수단 삼아 도시 이미지를 전환하고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람회 총감독의 자질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조경가나 식물학자 등 특정 분야 전문가에만 편중된 총감독은 공간 전체의 운영과 마케팅을 놓치기 쉽다”라며 “공무원 조직의 경직성을 깨뜨리고, 전체 공간 디자인과 관람객 동선, 상권 활성화를 종합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울산이 추진 중인 삼산·여천 매립지 활용 방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울산 고유의 스토리텔링’을 강조했다.

그는 “순천은 갯벌 습지를 지키기 위한 완충지대로 정원을 만들었지만, 울산은 죽었던 강을 살리고 쓰레기 매립장을 생태공원으로 둔갑시킨 ‘도시 재생’의 역사를 가졌다”라며 “순천의 방식을 복제하지 말고, 버려진 땅을 생태 자원화한 울산 고유의 브랜드를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남은 2년여의 준비 기간에 대해서도 “한국인의 역동성과 집중력이라면 2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라며 “독일의 BUGA(연방정원박람회)처럼 10년을 준비하는 모델도 있지만, 한국식 패스트트랙의 역동성도 강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순천의 오천그린광장처럼 시민들의 정주 환경을 높이는 지속 가능한 레거시(유산)를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