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쩌다 어달
깊은 밤, 집 앞까지 데려다준 상우의 차에서 내린 은수가 돌아서서 묻는다. '라면 먹을래요?'
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연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이다. 이영애가 읊은 이 짧은 대사는 이십 년이 넘도록 로맨틱한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내겐 이별을 통보한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던 상우의 쓸쓸한 말이 더 마음에 사무쳤다. 집 앞에서 이별을 맞는 은수와 상우,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눈부신 여름의 동해는 인물과 사건, 배경이 어우러진 서사의 모범으로 내게 남았다.
나는 지금 강원도 동해시에 있다. 동해시에서 예술가와 인플루언서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묵호 감성마을 동해愛 한 달 살기> 사업의 8월 입주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달간 지낼 숙소는 삼본아파트, 영화에서 은수가 살던 바로 그 아파트다. 두 동으로 이뤄진 작은 평수의 아파트 입구에는 영화 포스터가 이정표처럼 걸려 있고, 돌아서면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길 위로 한여름의 햇살만이 느른하게 쏟아지고 있다.
삼본아파트는 묵호항과 어달항이 만나는 논골담길의 언덕바지에 있다. 이른 아침, 노트북을 넣은 배낭을 둘러메고 샌들을 신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다음 얼음물을 가득 채운 텀블러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섰다. 묵호 등대와 바람의 언덕을 지나 논골담길을 따라 묵호항으로 내려가는 왼쪽 길 대신 어달항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양쪽으로 잡목과 밭이 뒤섞인 2차선 도로에는 그늘 한 줌 없고, 오가는 차도 드물었다. '내리막 경사 14도'라고 적힌 노란 삼각 표지판을 심란하게 바라보다 되돌아가기도 주저되어 터덜터덜 걸었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고개를 드니 어느새 짙은 수평선이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하늘과 밀어내기 한판에서 압승한 어달의 바다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높고 짙푸르렀다.
어달 삼거리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러 연인이 있었다. 아직 사랑을 믿던 때의 은수와 상우 같은 연인들이었다. 나는 연인들의 사진 찍기 놀이를 지켜보며 그들이 오래도록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의 소설은 대개 낯선 곳에서 시작된다. 특별한 사건이 아닌 스틸컷 같은 사람과 풍경의 이미지, 이미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 하나가 먼저 나를 붙든다. 댓바람에 허름한 슈퍼의 평상에 걸터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할아버지, 해변에서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짓고 또 짓느라 분주한 소년, 양산을 나눠 쓰고 백사장을 함께 걸어가는 어린 연인. 그 모든 풍경의 배경은 어달 바다이다. 수평선이 유난히 높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 한 손을 수평선에 높은음자리처럼 걸어둔 채 사진을 찍었다. 어달 바다에서는 사람의 마음도 수평선을 따라 조금씩 위로 끌려 올라간다. 차오른 마음은 다시 살아갈 힘이 된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카페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종일 앉아 있었지만 나는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대신 바다와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조급하게 붙잡으려 할수록 문장은 멀어지고, 오래 바라본 풍경은 언젠가 제 발로 찾아와 이야기가 될 것을 안다. 영화 속 은수와 상우가 떠난 자리에는 이제 다른 연인들이 서 있고, 그들 역시 언젠가는 각자의 봄날을 지나갈 것이다. 변하는 것은 사랑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이 바다일 것이다. 이번 여름, 내가 어달에서 지내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문장이 아니라 사랑이든 소설이든 무언가를 믿고 기다리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카페를 나와 다시 삼본아파트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걸었다. 언덕 끝에 다다르자 아침에 나를 주눅 들게 했던 '내리막 경사 14도' 표지판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하루 종일 오르내린 것은 언덕이 아니라, 어쩌면 한 편의 소설이 시작되는 마음이었는지도. 어쩌다 찾아온 어달에서, 나는 오래 기억될 8월의 여름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