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반구천의 암각화와 디지털 울산
역사 여행 하듯 실감 동영상展 ‘인기’ 현장 찾지 않아도 유산 가치 이해 쏙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 활용 필요 AI 수도 울산 발맞춰 가상 체험관 등 관람객 발길 끄는 박물관 전환 시급
휴대전화를 처음 사용하던 시절의 일이다. 유적 조사 차, 일본에 갔는데 하필 조사 둘째 날, 깜빡 충전을 제대로 안 했던지, 열심히 유적 여기저기를 찍는데, 전지가 다 나가 더는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됐다. 할 수 없이 촬영을 중단하고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넣어둔 채 수첩에 유적 현황에 대한 메모만 더한 적이 있었다. 점심 먹을 즈음에야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 구세대가 됐구나!’하며 자책한 적이 있다.
디지털 시대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고, 주변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영상이 넘치지만, 기성세대 다수는 여전히 반쯤 아날로그적 사고와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기대 수명이 높아져 기성세대라는 개념도 이전보다 10년, 심지어 20년 뒤로 미뤄지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거리도 크게 벌어진 게 2020년대의 한국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AI를 찾는 시대처럼 보이지만, 세대 간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멀어졌다고 할까?
최근 수년 사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철마다 새로운 실감 동영상을 선보이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방식의 전시 체험하게 한다. 다른 국공립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정기적인 기획전이나 특별전에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실감 동영상을 선보이지 않는 기관이 없을 정도다. 대형 쇼핑몰의 내부 광장치고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혼합현실 기법을 적용해 만든 동영상이 돌아가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를 보러 오려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울산시는 두 암각화 유적 근처의 편의시설을 더하고, 자동차를 몰고 오는 시민들의 접근이 쉽도록 주차장을 충분히 제공하고, 도로도 확장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해마다 유적 현장을 찾는 관람객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자,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보자. 이런 기대와 편의 제공이 좋은 일일까?
세계유산인 반구천의 암각화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야 울산의 관광 수입이 증대되고 울산 경제가 좋아지는가? 정말, 편의시설을 확대하면 세계유산을 찾는 관광객이 해마다 늘어날까?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를 찾는 관람객을 모니터링하면서 흘러나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실제 현장을 찾은 이들 가운데 다수는 유적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점을 아쉬워한다. 문화유산 해설사의 도움을 받고서야 유적을 일부 이해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현장 답사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왜 세계유산인지 알기 어렵다는 이도 있다.
역사시대의 왕궁이나 성, 사원, 그 외 유적 출토 유물은 그 자체로 이해 가능하지만,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암각화 유적은 그렇지 않다. 유적이 경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암각화 유적은 그것이 생성된 환경과 함께 봐야 이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암각화 유적은 전시실 안에 들일 수 없다. 일반 전시실 안의 모형으로는 유적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이해시킬 수 없어서다. 반구천의 두 암각화 유적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관람객에게 암각화 유적을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디지털 기술로 만든 실감 영상이 효과적이다.
대형 전시실의 6면 공간을 모두 활용한 실감 영상 안에서 암각화 유적을 설명해야 한다. 아예 암각화가 제작될 당시의 생활상으로 돌아간 영상을 만들어 관람객이 볼 수 있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울산시는 울산의 미래는 ‘디지털 울산’에 달려 있다고 인식하고 이와 관련한 정책 수립과 실행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날로그 시대 제조업의 메카로 불렸던 울산이 에코 울산, AI 울산을 외친지도 오래다. 그렇다면 세계유산 도시가 된 울산에 디지털 암각화박물관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MZ세대에게 익숙한 스마트-디지털 박물관 도시로 울산이 각인되는 게 전혀 이상하게 여길 것 아니지 않은가?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어떤 환경 아래 만들어졌는지, 현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람객이 가상 체험 차원의 스마트-디지털 경험을 한다면, 어떤 차원에서는 더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울산의 미래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세계유산 실감 영상 제작의 경험을 쌓아나가면서 열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호태 울산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