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새칼 줄게! 헌칼 다오?
헌칼, 경로당 어르신 손 거쳐 새칼·새 일자리로 다시 태어나 삼지스틸의 특별한 ‘새활용’
“새칼 줄게! 헌칼 다오!”
길을 걷다 이런 문구를 본다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재래시장 행사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호기심이 커졌다.
헌칼을 새칼로 바꿔준다고?
요즘 업사이클링이야 별의별 물건을 다 살려낸다지만, 설마 칼까지 새활용한다는 말인가.
궁금증은 곧 취재로 이어졌다. 30대 청년 사업가 최하희 대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좋은 기업은 제품보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는구나.’
우리는 금값이 오르고 은값이 오른다는 뉴스에는 민감하다. 하지만 매일 사용하는 칼과 가위가 어떤 자원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뎌진 칼은 신문지에 둘둘 말려 일반쓰레기봉투로 들어간다. 그렇게 버려지는 칼은 위험한 쓰레기가 되고, 비싼 스테인리스는 그대로 땅속으로 사라진다.
최 대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졌다.
‘왜 버릴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모을까.’
사실 칼을 만드는 기술보다 폐칼을 모으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원재료가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떠올린 곳이 경로당이었다.
“어르신, 집에 안 쓰는 헌칼 있으시면 새칼로 바꿔드릴게요.” 이 한마디가 통했다. 집집마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폐칼을 가져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거와 분류, 포장까지 어르신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거리가 만들어진다.
참 기막힌 역발상이다.
버려진 칼도 살리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역할을 드렸다. 나는 이것이 사회적기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회사.
최하희 대표는 사회적기업 현장에서 10년 가까이 기획과 경영을 경험한 베테랑이다. 서울에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남편, 대한민국 칼 명인인 외삼촌의 기술력까지 더해졌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 남은 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였다. 그 결과물이 주식회사 삼지스틸이다.
새칼 역시 예사롭지 않다. 다이아몬드 코팅 등 특허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 주방칼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였다. “사회적기업 제품이라 품질은 조금 아쉽겠지.” 이런 편견을 가장 먼저 깨뜨리고 싶다는 것이 최 대표의 목표다.
그녀의 말이 오래 남는다. “사회적기업이니까 사주는 제품이 아니라, 제품이 좋아서 먼저 선택받고 싶습니다.” 맞는 말이다. 착한 마음만으로는 기업이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좋은 제품이 먼저 인정받아야 사회적 가치도 오래 지속된다.
삼지스틸은 올해 사회적기업 창업지원사업 창업팀으로 선정됐다. 올가을에는 자체 브랜드 ‘소브드키친’으로 TV 홈쇼핑에도 도전한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버리며 산다. 칼도 버리고, 가위도 버린다. 그런데 어쩌면 더 빨리 버리는 것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은퇴한 사람. 나이 든 사람. 쓸모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삼지스틸은 그들에게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헌칼도 다시 쓰고, 사람도 다시 일어선다. 버려진 칼이 새칼이 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 다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업을 단순히 칼을 만드는 회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사람의 가치를 다시 벼리는 회사.
그것이 삼지스틸의 진짜 경쟁력이다.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