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대학의 눈물
AI가 지식을 가르치는 시대 ‘인재 양성소’로 전락한 대학 학생의 호기심으로 다시 깨워야
거들떠보지도 않는 학위와 의미 없는 학점으로 소위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 역할에 집중하는 대학이 생명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면서 대학은 레거시 미디어와 권력형 저널이 발표하는 대학 랭킹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다. 짤 생산의 도구와 기성세대를 위한 뉴스라도 제공하는 레거시 미디어는 그나마 내용이라도 생산하지만, 대학은 지식 생산 기능을 거의 멈추었다. 오직 기존 지식을 AI로부터 퍼다 나르는 교육의 틀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AI 교육 윤리 운운하며 마지막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대학이 연구 분야에서 역할을 담당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교육 기능을 상실한 대학의 연구가 연구소와 별도로 왜 존재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기업이 요구하는 고급 인력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대규모 정부 예산의 집행이 쉬운 기관으로 대학은 전락했다. 이미 목숨을 다한 거나 다름없다. 목적이 사라졌는데 왜 아직 그곳에 있는가? 그것은, 아직 대체할 체계와 구조가 없어, 대학 없는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그냥 두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과 뉴스를 유튜브 플랫폼으로 이미 장악한 구글과 같은 빅테크의 다음 타겟은 대학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빅테크가 대학의 학위와 교육 학점을 대체할 모델과 적용 플랫폼을 제안한다면, 대학의 붕괴는 순식간일 것이다. 이미 미국 등지에서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는 젊은 학생들이 급증해 장학금 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명문 대학 소식이 들려오고, 대학 학위를 대신할 구글 지표를 기업 채용 시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위기 차원이 아니라 붕괴가 이미 시작된 것인 듯하고 대학을 대체할 대안 비즈니스 모델의 발표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AI는 이미 “대학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내가 꿈꾸는 대학은 라캉의 대학 담론이 아니라 라캉의 분석 담론이 대학을 형성하는 그런 곳이다. 무슨 논리인고 하니, 학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를 파악하면 그 결과 학생이 주체적으로 말하게 된다. 주체의 말이 곧 지식인데, 학생 자신이 원했던 것을 그 지식이 충족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대학 교육이다. 지식이 학생에서 생산되는 대학의 담론 구조에서, 그럼 대학에서의 교육자, 즉 교수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이것 또한 명확하다.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틀에 박힌 지식을 오염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해진 지식이란 없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생이 파악하기 위해 기존 지식을 사정없이 오염시키는 역할을 교수가 담당한다.
AI가 온 세상의 가치가 되었는데 AI를 거부하고는 국가, 개인, 그리고 대학도 생존할 수 없다. AI는 교육자와 학생 모두 마음껏 자유롭게 써야 한다. 그리고 국가적 AI 산업을 이끌 인재가 대학에서 나오도록 대학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이 AI 인재 양성을 교육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인재 양성이 대학의 목적이 되는 순간, 대학은 예산 지원만 받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정부의 요청에 비판 없이 따르게 된다. 교육 기관이 아니라 인재 양성 기관이 되어 버린다.
대학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든지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정부 정책을 돕기 위해 대학이 최선을 다하는 것과 정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다르다. 미국, 중국 등 거대 국가의 빅테크 기업들의 AI 굿판에서 한국의 대학이라도 이제는 내려와 교육 기관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AI 인재 양성이란 목표 대신, 한국이 차세대 AI 기술을 주도할 수 있는 언어이론, 언어 수학이론, 차세대 AI를 주도하면서 AI의 미래 표준까지도 바꿀 수 있는 IT 아이디어 연구와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리고, 대학의 현재 위기를 예산 확보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것으로 극복하려 하지 말고, AI 시대 대학의 개념과 구조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데, 교수는 온 힘을 쏟아야 그래도 희망을 기대할 수 있다.
방법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반복해서 강조하면, 학생의 지식 욕구 위치로부터 시작하는 분석 담론으로 대학을 만드는 거다. 즉, 모든 가치에 대한 지식은 학생의 호기심에서 시작된다는 필연을 믿는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순수한 영혼의 학생이 있다. AI가 믿고 있듯이 대학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 언어의 깊은 학문적 구성을 위해, 라캉의 말대로 깊은 잠을 자고 있다면, 이제 대학이 깨어날 일만 남았다.
조재원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