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직자 ‘얼굴 비추기’ 의전, 낡은 관행 깰 때다

2026-08-24     강정원 논설실장

 

최근 북구의 한 소규모 도서관에서 열린 작가 초청 강연에서 사전 공지에도 없던 구청장과 구의원들의 내빈 소개, 축사, 기념촬영 등 의전 행사가 15분간 진행됐다고 한다. 강연장의 앞줄 두 줄을 ‘내빈석’으로 비워두느라 정작 강연을 듣기 위해 일찍 찾은 주민은 물론 초청 작가가 뒷줄로 밀려나는 촌극이 빚어졌다. 주민을 위한 문화 행사가 또다시 선출직 공직자들의 ‘얼굴 알리기용’ 무대로 전락한,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선(先) 의전’의 민낯이다.

구청은 민선 9기 출범에 맞춰 주민과 소통하고 행사를 격려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소통과 격려는 고사하고, 의전행사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뜬 공직자들로 인해 주민들에게 불쾌감만 안겼다. 주말 귀한 시간을 쪼개 작가와의 교감을 기대하며 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원치도 않은 정치인들의 인사말을 들으며 들러리가 된 것이다. 15분이라는 시간은 독자들이 준비한 질문을 던지고 작가와 깊이 소통하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한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 의전은 소통이 아니라 ‘민폐’일 뿐이다.

울산 지역 지자체 행사의 과도한 의전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 구청은 관내 축제에 공무원 수백 명을 동원해 내빈과 1대1로 전담 의전을 맡기려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역 사회 공직사회가 여러 차례 축제 현장의 불필요한 의전·동원 관행을 근절시키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김상욱 울산시장이 최근 부처 회의 중 “공무원은 축제하려고 있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동원 금지령’을 내렸다. 재난 현장에 공무원들의 의전을 위해 동원되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역의 다른 공직자들도 새겨야 할 대목이다.

선출직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주민 행사를 찾아 얼굴을 비추고 표심을 관리하는 행태는 구시대적 권위주의의 잔재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앞자리를 차지하고 마이크를 잡는 정치인이 아니라, 조용히 뒷자리에서 행사를 지켜보며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직자의 소통 방식이다. 내빈 소개 일괄 처리, 무대 축사 폐지, 자율 좌석제 도입 등 다른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의전 간소화 혁신을 울산 공직사회가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참에 공공 행사의 의전 기준을 전면 재정비하고 실질적인 의전 간소화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실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