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망국의 날, 다시 생각하는 동학과 최제우

경술국치일에 생각하는 동학 울산에서 최제우가 외친 개혁 오늘은 유족수당 문제로 논란

2026-08-30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8월의 마지막 날이다. 116년 전 1910년 8월 29일, 대한은 나라를 빼앗겼다. 그 망국의 기억이 132년 전 역사를 소환하고 있다. 동학이다. 발단은 유족수당이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연 12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 논란이 붙었다. 132년 전 사건의 증손자에게까지 세금으로 예우하는 것이 맞느냐는 주장부터 임진왜란 의병 후손에게도 수당을 줄 것이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지난 주말은 경술국치일이었다. 나라가 망한 날이다. 조선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조정은 썩었고 관리는 백성을 뜯었다. 삼정은 문란했고 가렴주구는 일상이 됐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문호는 열렸지만 조선의 이권은 속속 침탈당했다. 지주는 쌀을 내다 팔아 돈을 벌었지만 소작농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밖에서는 열강이 문을 두드렸고 안에서는 백성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조선 조정은 어느 쪽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백성이 일어났다. 1894년 농민들이 보국안민의 깃발을 들었다. 전봉준이었다. 조선 왕실이 택한 것은 개혁이 아니라 외세였다. 고종은 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청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출병했다. 전주화약으로 농민군과 조정의 충돌은 일단락됐지만 청과 일의 군대는 돌아가지 않았다. 일본군은 경복궁을 무단 점령했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조선 땅에서 남의 나라 군대가 전쟁을 벌였다. 폭정에 항의하며 일어난 난을 막겠다며 불러들인 외세가 왕궁을 점령했다. 망국의 문이 그렇게 하나씩 열렸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누군가. 그는 이미 1893년 교조신원운동 때부터 ‘척왜양’을 내걸고 외세를 몰아내자고 주장했다.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건 왜의 마수와 난신의 폭정이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이 알려지자 깃발을 들었다. 농민군을 모아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맞섰지만 근대식 무기의 벽을 넘지 못했다. 패배 뒤 무자비한 살육이 이어졌고 전봉준도 붙잡혀 처형됐다. 그로부터 16년 후 대한은 국권을 빼앗겼다. 전봉준이 들었던 깃발의 배경은 동학이었다.

 동학은 1894년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간을 30여 년 앞으로 돌려보자. 영남에 수운 최제우가 있었다. 1824년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전국을 떠돌며 유불선과 서학, 정감록 등을 접했다. 그 유랑의 시절, 삼정문란과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신음하는 백성의 삶을 보았다. 서세동점의 거센 물결도 목격했다. 세상은 바뀌고 있었지만 조선은 꿈쩍하지 않았다. 수운은 그 모순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 길에 울산이 있었다. 울산 처가에 생활의 거점을 둔 수운은 중구 유곡동 여시바윗골에서 동학을 잉태했다. ‘을묘천서’를 바탕으로 수행을 이어간 그는 1860년 경주 용담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렀다. 

 동학의 핵심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이었다.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다. 지금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분과 계급이 운명을 결정하던 조선에서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양반도 하늘이고 상놈도 하늘이라면 신분은 무엇인가. 남자도 여자도 하늘이라면 남존여비는 무엇인가.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이라면 권력자가 백성을 함부로 짓밟을 수 있는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말은 봉건 조선의 질서를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선언이었다.

 조선왕조가 수운을 두려워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수운은 포덕을 시작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체포됐다. 죄목은 ‘좌도난정(左道亂正)'. 삿된 도로 바른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것이었다. 1864년 대구 경상감영에서 참수됐다. 마흔 한 살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까지 죽이지는 못했다. 가르침은 해월 최시형을 거쳐 민중에게 퍼졌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깨달음은 30년 뒤 전봉준과 농민군의 손에서 혁명의 언어가 됐다.

 농민군이 요구한 세상은 분명했다.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신분의 굴레를 벗기고 노비문서를 불태우자는 외침이었다.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고 토지를 고르게 나누자는 주장도 있었다. 130여 년 전 조선에서는 세상을 뒤집자는 이야기였다. 낡은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이었다. 그 사상의 뿌리가 울산에 있었다. 최제우는 자신에게 물었다. 왜 백성은 굶주려야 하는가. 왜 신분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절해야 하는가. 그 질문이 동학이 됐고 마침내 혁명의 깃발이 됐다.

 다시 120만원으로 돌아가 보자. 유족수당을 둘러싼 논란에 정치가 끼어들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지방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는 제대로 따져야 한다. 한 세기가 훨씬 지난 과거의 족보를 들춰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온당한지도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동학을 정치의 도구로 만들려는 자들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동학의 정신과 뿌리를 계승하는 문제와 유족수당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자칫 돈의 문제에 갇혀 역사의 본질이 왜곡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망국의 원인도 외세만이 아니었다. 백성의 절규를 듣지 못한 권력, 시대가 바뀌는데도 낡은 질서를 움켜쥔 지배층, 개혁을 요구하는 백성을 적으로 돌리고 외국 군대까지 끌어들인 무능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은 분명 망국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파고들 틈을 만든 조선 내부의 부패와 무능은 책임이 더 컸다. 수운을 죽였고 전봉준을 죽였다. 백성이 요구한 개혁을 억눌렀다. 그렇게 백성의 입을 막는 동안 외세는 궁궐 담을 넘었고 끝내 나라를 빼앗았다.

  116년 전 대한이 망한 8월의 끝에서 울산 여시바윗골의 최제우를 떠올린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라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지 않는 순간 되풀이된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국경을 넘어오는 외세만이 아니다. 백성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권력,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는 독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려는 태도가 망국으로 가는 길을 넓힌다. 수운이 말한 개벽은 낡은 세상을 걷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이다. 망국의 달 8월, 울산에서 움튼 그 오래된 외침을 다시 한 번 새겨 볼 일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