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유일한 실종자는 ‘결핍’이다

풍족함 속에서 사라진 ‘결핍’ 돈·권력 부족은 결핍 아닌 욕망 무엇이 필요한지 돌아볼 때

2026-08-30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석유, 데이터는 풍족하고 돈은 넘쳐나지만, 이 모든 재화와 자본에 실종된 것이 하나 있는데 재화와 자본의 결핍이다. 엄청난 재산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돈의 결핍이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결핍이다. 그럼 그런 결핍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너무나 간단해서 오히려 발견하지 못한다. 눈에 너무 가까이 가져가면 보이지 않는 글자처럼 결핍은 너무 가까이 존재해 발견하기 오히려 힘들다. 현란한 아름다움에 취해 ‘미’를 느끼지 못하고, 과도한 진리에 취해 진실을 잊고, 정의에 집착하다 ‘선’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경제 결핍, 예술 결핍, 대학 결핍, 지식 결핍, 정치 결핍이라 믿는 착각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뭄으로 한 지역에 물이 부족하면 그 지역 주민에게 물 부족은 결핍이 아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지역의 사람이 느끼는 물 부족 상황이 결핍이다. 결핍은 마치 공식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주체적 행위로 연결된다. 물 부족을 ‘겪는’ 한 지역의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행위자는, 물 결핍을 ‘느끼는’ 인근 지역 사람이다. ‘겪는’ 동사와 ‘느끼는’ 동사가 연결되니 결핍이 작동한다. 즉 결핍은 단순히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결핍에 행위를 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보면 없는 무엇이 생기는 창조 현상이라고 해야 한다.

이는 비단 물 부족 해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예로, 사회 정의 실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정의 실현에 의지가 생기면 권력 결핍을 느끼게 된다. 결핍은 공식이 작동하듯 행위로 연결된다. 유권자는 권력 결핍 해결을 위해 민주주의 표를 공급한다. 인공지능 메모리 반도체 부족을 겪는 IT 산업계에 정부는 지원 결핍을 느껴 국민 세금으로 형성된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족과 결핍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다루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부족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 지역이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물이 부족한 곳은 늘 딴 곳에도 존재하며, 공적 자금이 왜 꼭 AI 메모리 반도체에 투입되어야 하냐고 호소하는 다른 어려움을 지닌 곳이 꼭 있다.

즉, 부족에 대응하는 결핍은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절대적 메타 존재가 있는데, 바로 ‘돈’과 ‘권력’의 결핍이다. 정의 부족, 국회의원 수 부족, 자원 부족, 기술과 재료 부족 등 모든 부족이 결국 돈과 권력의 결핍으로 귀결되기 쉽다. 돈과 권력에도 결핍이란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왜냐하면 돈과 권력은 그 자체가 부족해서 결핍을 느끼는 무한 회로를 돌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이 왜 꼭 필요한지 자문하지 않고 일단 취하고 다음을 보자고 자신을 속인다. 반도체 부족, 정의와 아름다움의 부족으로 생기는 결핍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부족하다고 느껴 생기는 결핍이라면, 이는 부족 결핍이 아니라 결핍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부족-결핍 법칙은 돈과 권력의 결핍에 적용될 수 없는데, 돈과 권력은 결핍이 결핍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결핍-결핍 무한 방정식을 요구한다.

결핍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부족과 결핍 사이에는 넓고 깊은 경계면이 있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혼돈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데, 부족과 결핍 앞에 들어가는 주체이다. 무엇이 부족한지 물어 따져보면 금방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 반도체가 부족, 인재가 부족, 지식이 부족, 에너지가 부족, 아름다움이란 ‘미’ 부족, 국회의원 수가 부족, 공항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실은 반도체, 인재, 지식, 에너지, 예술 작품, 국회의원, 공항이 지닌 주어 위치에 돈과 권력을 넣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을 가려내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누군가 반도체, 인재, 지식, 에너지, 예술과 문화, 국회의원, 공항의 부족을 말하면서 자기의 돈과 권력의 부족을 말한다면, 그것은 결핍이 결핍된 자들의 탐욕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의 결핍이 숨 쉬는 공기처럼 흘러넘쳐야 한다. 그래야만 결핍으로 부족을 메꿀 수 있고, 결핍이 결핍된 나와 이별할 수 있다.

결핍만이 결핍된 사회에서 내가 온전한 결핍자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으로 기회를 달라는 자를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혹시 돈과 권력을 가져야만 나의 부족을 메꿀 수 있는 비전과 목표를 가진다고 믿는 나부터 최우선 살펴야 한다. 내가 어디에서 진정으로 결핍을 느끼는지 찾아내려 전력을 다할 때만이, 타자의 진실이 부족인지 혹은 위선자의 돈과 자본 결핍의 결핍인지 판별할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조재원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