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기러기 발자국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청춘 최루탄 냄새로 얼룩진 아픈 시대 마음에 새기며 다시 먼 길 나서
서랍을 정리하다 사진 한 장을 만났다. 아, 그때의 모습이구나. 그 시절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사진속의 나는 무엇이 즐거운지 혼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프사에 담았다. 그리고는 짧은 소감을 적었다.
「사진은 82년 11월. 군에도 갔다 오지 않은 청춘이 뭐가 저렇게도 좋을까나. 그래도 그 시절로는 안 갈래」 60자 밖에 쓸 수 없어서 간단하게 적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설렁 갈수 있다고 해도 결코 가고 싶지 않은 시간.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 어느 시대, 아프지 않은 청춘이 있어서라. 80년, 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5월 17일, 아버지 모르게 도장을 새겨 학교에 자퇴서를 내었다. 학과가 적성이 맞지 않아서 나 혼자 내린 결론이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라디오는 듣고 있었는데 밤 12시에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학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가 전개됐다.
밤새 뒤척이다 정말 휴교령이 내려 졌는지를 확인하려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봤다. 학교가 가까울수록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버스가 교문 앞에 멈췄다. 이미 그곳에는 낯선 풍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교문은 굳게 닫혀있고, 두 명의 군인이 교문 양쪽에 서 있었는데 한 손에는 M16 총을 들고는 전방을 바라보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총 끝에는 날카로운 대검이 꽂혀 아침 햇빛에 반짝반짝 거렸다. 벌써 40여년 전의 기억인데도 그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다.
전국의 대학교가 휴교령이 내려졌기에 굳이 하숙집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집으로 왔다. 부모님은 잘 내려왔다고 반겨줬다. 그래서 나의 자퇴는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사건이 됐다. 틈틈이 공부를 해서 다시 학교를 가게 됐다.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혼잡했는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아픈 청춘, 그 시대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누구나가 다 힘들게 살다보니 정작 자신은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다.
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에서는 데모가 일어났다. 등굣길에 먼저 만나는 것은 코를 찌르는 최루탄 냄새였다. 심한 날에는 데모를 하다 잡혀간 학생들과 데모를 진압하러 들어온 진압대를 잡아서 서로 교환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가 군대를 가게 됐다. 군대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훈련소를 나오니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난 데모진압 사단에서 복무를 하게 됐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있어서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예비사단이란 명목으로 온갖 훈련을 다 받았다. 그 중에서도 충정부대로써 데모진압 훈련도 받게 됐다. 진압봉으로 훈련을 하는 보병들과 달리 차량만 점검하면 됐다. 그렇게 버티다 제대를 했다.
복학을 하니 같이 공부한 여학생들은 다 졸업을 하고 없었다. 재학 중 군대를 갔다 온 친구들이 하나 둘 복학을 했다. 남학생에게는 큰 숙제인 군 문제를 해결하니 더 큰 숙제가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바로 취업이었다. 학교공부와 취업공부는 전혀 달랐기에 이 둘을 잘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데모를 같이 하자는 후배들을 만나면 고생한다고 기껏해야 음료수나 사 주는 내 자신이 미웠다. 취업을 앞둔 졸업생은 데모를 하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또 다른 후배들이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데모진압 훈련을 하고 있는 그들, 그런 복잡한 시절이 그 사진에 녹아 있었다. 이 땅에 인류가 생존해 오면서 힘들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었을까?
'사람의 한 생은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 송나라 때 소식蘇軾의 시에 나온다. 내 청춘도 분명히 있었지만,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먼 길
뒤돌아 보지 말자 갈 길은 멀고멀다
뛰기만 했던 시간, 넘어졌던 그 고샅길
마음에 새겨 읽으며 다시 먼 길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