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쟁점] 새 철길 필요한 건 국방부…‘진짜 원인자’ 누구?
(상)온산선 폐선 3140억 ‘원인자 부담’ 딜레마 산업화물 사라지고 군수용 항공유 수송만 유지 울산, 폐선 원하는데 대체선 3140억 부담 처지 국가안보 비용 지방정부 전액 부담 불합리 논란
2026-08-31 김상아 기자
울산이 원하는 것은 기존 철도의 폐선이다. 반면 폐선 이후에도 군수용 항공유의 철도 수송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국방부 측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기존 철도를 옮겨달라고 요청한 주체가 울산이라는 이유로 대체선 건설비 전액을 시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길을 없애려는 곳’과 ‘새 철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하나의 원인자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울산시는 기존 남창역~온산역 온산선을 폐선하고 용암역에서 온산국가산업단지 방향으로 6.9㎞가량 우회하는 대체노선을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건의했다. 사업비는 약 3,140억원이다.
최근 울산시 도로·교통망 현안회의에서도 재원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3,140억원 전부를 우리 시가 부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김상욱 울산시장도 “시에 그만큼 돈이 있는 게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정부가 원인자 부담 원칙을 고수하면 국가계획에 반영되는 것만으로는 사업 추진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3,000억원이 넘는 대체철도 건설비를 시가 홀로 떠안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계획에 이름을 올리고도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온산선 폐선은 남울주의 도시 변화에 따른 요구다.
온양·온산 두 읍에는 현재 2만3,000세대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데다 대안3지구와 덕신동상지구, 동상지구 등 일대에 승인·지정됐거나 추진 중인 주요 주거개발 규모만 1만5,000세대에 육박한다. 기존 산업지역 주변이 빠르게 대규모 주거생활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울산시는 현안회의에서 현재 온산선이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남창 북측의 도시개발이 진행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는 점을 짚었다. 과거 산업단지 외곽을 달리던 철도가 향후에는 주거생활권 사이를 지나면서 사실상 도심 한가운데로 위험물질을 실어나르게 된다는 것이다.
열차에 실리는 화물도 인화성 위험물인 항공유다.
온산선의 역할도 47년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온산선은 1979년 온산국가산단 입주기업들의 화물수송을 위해 남창역~온산역 8.6㎞에 개설됐다. 애초 여러 산단기업의 산업물류를 담당하기 위한 철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 산업화물 수송은 하나둘 사라졌다. 온산선을 이용하던 영풍의 황산 수송도 지난해 중단됐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황산 취급대행 계약 갱신 거절에 반발해 가처분을 제기했지만, 올해 5월 고려아연의 승소가 확정됐다. 현재 온산선을 통해 실질적으로 운송되는 화물은 S-OIL에서 출하하는 군수용 항공유만 남은 셈이다.
S-OIL의 군납용 항공유 수송은 온산선 개통과 동시에 현재 형태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S-OIL은 이듬해인 1980년 온산역에서 공장까지 4.38㎞의 전용철도를 별도로 개설해 기존 온산선과 연결했고, 이후 이를 통해 군납용 항공유를 수송해왔다.
여러 산단기업을 위한 산업물류 철도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국가 군수물자의 수송 기능 하나를 위해 유지되는 셈이다.
게다가 항공유 수송이 반드시 철도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울산시는 2022년 시의회 답변에서 공군의 수송수단 다양화 요청에 따라 S-OIL이 도로와 철도를 병행해 항공유를 운송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민간기업의 물류가 철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기보다 공군이 복수의 수송망을 요구하면서 철도 운송이 유지되는 구조다.
공군이 철도를 계속 필요로 하는 이유는 평시뿐 아니라 전시 등 유사시에 대비해 도로 하나에만 의존하지 않는 복수의 병참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철도 수송망 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원인자’를 둘러싼 딜레마가 생긴다.
울산은 기존 온산선이 사라지면 위험물 열차의 주거생활권 통과 문제를 해소하고, 도시개발에 따른 생활권 단절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 울산과 주민들이 원하는 목적은 기존선의 ‘폐선’으로 상당 부분 달성된다.
반면 기존선을 없앤 이후에도 3,140억원을 들여 다른 곳에 새 철도를 놓아야 하는 이유는 군수용 항공유의 철도 병참망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선을 없애야 하는 이유와 대체철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같다고 볼 수 없는 구조다.
국가안보를 위해 복수의 병참망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 자체와 그 비용까지 지방정부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대목이다.
‘누가 기존 철길을 없애자고 했느냐’만 따질 것인가, 아니면 ‘누가 3,140억원짜리 새 철길을 필요로 하는가’까지 볼 것인가.
이 ‘원인자’의 정의가 47년 된 온산선 폐선의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