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이 시대의 신화
신화 속 영웅, 뛰어난 능력에도 겸손 시대 영웅 자처하는 현대 지도자들 미래 보지 않는 과신에 희생만 커져
영화 오디세이의 열기가 대단하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신화 이야기에서 감동을 발견한다. 로봇과 대화를 나누고 스마트폰 화면에서 모든 정보를 얻고 살아가지만, 삶의 근본적인 주제와 희로애락의 대상은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일도 이성적인 분석보다는 신화적인 설명이 훨씬 효율적인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영웅들이 악을 제거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는 모든 신화의 주제다. 그리고 대규모 살상이 끝없이 지속되는 동유럽과 중동의 전쟁도 모두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자칭 영웅들이 벌이는 참극이다.
신화의 세계에 등장하는 선과 악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구분이 명확하다. 그래서 영웅들이 악당을 물리치는 이유도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양쪽 모두 상대편을 악이라고 규정한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이해하려면 어떤 일이 발생한 원인과 동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혼란과 광기는 원인과 결과라는 과학적 접근법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얼치기 영웅들이 벌이는 어설픈 영웅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신화 속의 영웅들은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도 절대로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높은 영역에 있는 존재들에게 끊임없이 신탁을 구하고 자연의 섭리 안에 숨겨진 지혜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영화 오디세이의 주인공도 신들과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하고 진지하다. 그리고 스스로 영웅이라고 자처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초래할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대판 영웅들은 스스로 시대적 영웅이라고 서슴없이 자처한다. 미국의 트럼프는 자기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자평한다. 노예제도를 없애고 근대 시민권의 토대를 마련한 링컨조차도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자기의 판단에는 한 치의 오류도 있을 수 없다고 자신한다. 전쟁에서 죽어간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듯한 그의 말투를 보면 지극히 조야한 신화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불편하다.
러시아의 푸틴도 오래전부터 스스로 영웅이라고 자부해왔다. 전쟁 영웅이라 불리기 좋아해 전투기를 직접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집권한 후에 일으킨 전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전쟁으로 통치한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과신하고 힘을 과시하는 사람이 영웅이 될 리가 없다.
모든 신화에 등장하는 주제가 또 하나 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웅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제일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신화뿐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도 모두 고난을 통해서 새로운 인식의 경지에 다다른다. 예수도 그렇고 부처도 그렇다.
지금 온 세상을 혼돈 속으로 빠뜨리고도 너무나 당당한 미국이나 러시아의 지도자를 보면서 그들이 왜 영웅이 되지 못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그들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믿어온 신념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신화 속의 영웅들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영웅이 되고 싶은 트럼프나 푸틴에게 힘을 부여한 사람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위임한 권력 속에 인간의 생명을 무한히 소모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시작할 권한도 포함된 것인가. 이들을 지도자로 선출한 시민들도 자신들의 선택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을까.
평범한 시민이 대단한 결심을 하면서 지도자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쉬운 선택은 결국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지금 전쟁이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