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용혜인은 정치가 가장 쉬웠구나
지지율 하락 반전카드가 역풍 젊은 정치인의 부끄러운 민낯 이중적 태도에 젊은층도 분노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지율 30%대로 추락한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 2년차 중폭 개각으로 반전을 꾀했다. 1990년생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한 것은 일종의 승부수였다. 청년, 여성, 소수정당, 재선 의원. 그림은 좋았다. 2030의 이탈을 막고 젊은 세대의 직접적인 정책 참여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아뿔사, 반전은커녕 논란만 키웠다.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야권은 ‘정권 자폭 카드’라며 달려든다. 개각의 히든카드가 조커가 되는 분위기다.
왜 하필 용혜인이었을까. 젊은 정치의 상징성이 배경이었다. 문제는 장관 후보자가 되고 나니 젊음이라는 포장지 안에 숨어 있던 낡은 정치의 문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핵심은 특권이다. 시민단체는 용 의원이 몇년전 제주 가족여행 당시 가족과 함께 김포공항 귀빈실을 이용한 일을 문제 삼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가족여행’과 ‘국회의원’, 그리고 ‘공항 귀빈실’. 세 단어를 한 줄에 놓으면 불편해진다. 더구나 기득권과 특권을 비판하며 성장한 진보 정치인이라면 그렇다. 남의 특권은 사회악이고 내 특권에는 사정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이 귀빈실을 이용하면 국회의원 특권이고 내가 이용하면 설명 가능한 편의인가. 특권은 누가 누리느냐에 따라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공항 특혜는 시작에 불과하다. 장관직 수락 이후 용혜인 정치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본소득당 창당 과정도 그렇다. 용혜인은 2020년 1월 기본소득당 창당 사흘 뒤 남편 박기홍씨를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첫 회의 기록에는 참석자 용혜인, 참관인 남편 박씨가 적혀 있다. 이후 전국운영위원회의 인준 절차는 밟았다. 후보자 측은 창당 직후 당내 추천과 숙의를 거친 인사였다고 해명했다. 남편이라고 정당 활동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능력이 있다면 사무총장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법이 아니다. 정치다.
용혜인식 정치문법은 남이 자기 사람을 요직에 앉히면 사당화라고 비난했다. 가족을 가까이 두면 가족정치다. 측근을 돌려 쓰면 카르텔이다. 그런데 내 남편이면 능력이고, 내 사람이면 적재적소이며, 내 당이면 소수정당의 불가피한 현실이 된다. 참으로 편리한 문법이다. 상대를 향할 때는 시퍼렇던 원칙의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순간 버터칼이 된다. 내로남불이다.
용혜인 의원실 보좌진 9명 가운데 최소 5명이 기본소득당 주요 당직이나 지역위원장을 지낸 것으로 파악됐고, 당과 의원실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후보자 측은 진보정당에서는 당직과 원내 인사 사이의 이동이 일반적이며 소수정당의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작은 정당은 사람도 돈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기득권과 구조’를 말하던 정치인이 자기 문제가 되면 갑자기 ‘현실’을 말한다. 남의 측근 정치는 기득권 구조이고 내 측근 정치는 작은 정당의 현실이다. 남이 자리를 독식하면 특권이고 내가 자리를 지키면 책임이다. 남에게 들이대는 기준과 자신에게 들이대는 기준이 다르다.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것은 자신에게만 관대한 정의다.
문제의 핵심은 의원직에 있다. 이번 논란의 민낯이다. 용혜인은 장관이 되더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가능하다. 지역구 의원이 장관을 겸한 사례도 많다. 그러나 비례대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과거 비례대표 의원들이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후순위에게 의석을 넘긴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용혜인에게는 또 사정이 있다. 기본소득당의 국회의원은 용혜인 한 명뿐이다.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당은 원외정당이 된다. 사퇴하면 그 의석이 기본소득당의 다른 사람에게 자동 승계되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지점에서 용혜인의 잔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의원직을 지켜야 하는 진짜 이유는 분명하다. 장관이라는 개인의 영광도 얻어야 하고 기본소득당의 원내정당 지위도 지켜야 한다.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싶은 게 진실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그 의석의 탄생 과정이다. 용혜인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거대 정당이 주도한 비례연합정당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번에는 그 한 석을 지키기 위해 장관이 돼서도 의원직을 놓을 수 없다고 한다. 위성·연합정당이라는 거대 정당의 우산으로 국회에 들어와 이제는 그 의석 하나가 당의 생존 이유가 됐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은 인간의 특권에 맞서 혁명을 시작한다. 그런데 권력을 잡자 인간의 집에서 자고, 인간의 옷을 입고, 마침내 두 발로 걷는다. 창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물들은 어느 쪽이 돼지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특권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특권의 주인만 바뀌었다. 우리 정치가 딱 그 수준이다. 국민은 정치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말을 몰라서가 아니다. 너무 많이 속아 이제 일반적인 문법이 먹히지 않는다.
용혜인은 1990년생이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우리가 젊은 정치를 원하는 것은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다른 정치인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낡은 정치의 문법을 깨라고 젊은 정치를 부른다. 그런데 젊은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와 오래된 정치인들이 수십 년 동안 갈고닦은 자리 지키기부터 배웠다면 그것은 세대교체가 아니다. 얼굴만 바꾼 구태다.
장관이 되고 싶으면 장관으로 능력을 보여주면 된다. 의원직이 그렇게 중요하면 국회에서 자신의 정치를 계속하면 된다. 기본소득당이 걱정된다면 국회의원 한 명이 빠져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장관도 가져야 하고 의원직도 가져야 하고 원내정당이라는 간판도 지켜야 한다면 결국 내려놓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남에게는 내려놓으라 하고 나는 움켜쥔다. 남의 기득권은 혁파의 대상이고 내 기득권은 사수의 대상이다. 그래서 용혜인은 정치가 가장 쉬웠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