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정치인 용혜인

정치의 구멍, 그리고 용혜인 원칙만으로 재단하기 힘든 선택 현실정치의 조건도 함께 봐야

2026-09-08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정치의 구멍을 형이상학이 막는다”라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말이 있다. 라캉의 말이지만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알랭 바디우 세미나: 자크 라캉⟫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강조하고 해석하면서 유명해졌다. 1995년 1월 18일 세미나에서 알랭 바디우는 정치에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정치는, 지식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지점(즉, 정치 구멍)에서 어떻게든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정치는 서두르는 행위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여기서 먼저, 올바른 정치적 지식이란 애당초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즉, 지식은 진리로 굳어지면 곤란하다. 다른 영역에서의 지식도 그렇지만, 정치 영역에서의 지식은 훨씬 더 굳어져서는 안된다. 정치가 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나 수학과는 전혀 다른 논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자본의 논리다. 보수이건 진보이건 현대 정치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얘기될 수 없다. 자본 논리 중에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동하는 정치 논리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진보 정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솔직해야 한다. 정의와 평등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자본 논리 하에서만 정치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지식도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로 작동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자본 논리를 지닌 정치적 지식을 사회에 적용하면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 너무나 많이 발생한다.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정리하면, 신자유주의란 자본 논리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정치의 언어로는 소통할 수 없는, 의미를 만들기 어려운 현실에서 어떻게든 정치 행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진리인 지식이 없듯이, 절대적 진보란 없다.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행하는 모든 정치는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의 언어로 행해질 수밖에 없다.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진보 정치 집단이나 노동조합이라고 할지라도 정치적 자본 논리 하에서 정치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정치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정치 세계에서, 나름의 정치 논리로 진보적 지식 행위를 해야 하는 게 진보 정치다. 그런 진보 정치 집단 중 하나가 기본소득당이고 그 중심에 용혜인 의원이 있다. 이런 한국의 정치 배경에서, 어떻게든 제도권 정치를 해내야 하는 상황이, 편법을 써서라도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란 독배를 마시게 한 것이라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그런 정치 구멍에서 정치 행위를 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들어가지 않고 총선을 치른 다른 진보 정당들도, 당시 선거 연합을 많든 적든 고민한 것을 보면 그만큼 한국 정치 현실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남성성의 핵심은 정의, 여성성의 핵심은 보살핌이라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여기에서 남성성, 여성성은 남성, 여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남성이라도 여성성을 지니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남성성을 가지는 여성도 마찬가지다. 용혜인 의원의 정의와 보살핌 정치는 그가 대표 발의한 여러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본소득 탄소 세법, 생활 동반자 관계법, 일·가정 양립 및 돌봄 제재 법안, 위기 청소년 지원 법안 등이 대표 발의 정책이다. 그는 남성성인 정의와 여성성인 보살핌 정치적 행위 능력을 고루 지닌 한국 제도권 내에서 남성성과 여성성 정치 균형을 지닌 흔치 않은 정치인이라고 믿는다. 비록 정치적 편법을 썼지만, 그가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와 늘 함께 한 것도 사실이며, 어려운 정치 현실에서 정치 구멍을 자신의 소신으로 메우고 있는 정치인임은 틀림 없다.

용혜인이 이번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가 되면서 비례대표 의원을 유지하는 것을 두고 한 진보성향 기성 방송의 뉴스 앵커는 ‘앵커 한마디’에서 용혜인 의원 자신이 비판한 기득권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준화된 진리 차원의 지식대로 행위를 하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란 것을 이해하지 못한 앵커 한마디라고 판단한다. 거대 양당이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흔드는 국내 정치 정글에서, 정글의 생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작은 정치 생명체 모두에게 맹수의 정글 법칙이 마치 올바름의 표준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위성정당 통한 국회의원 당선, 장관과 비례대표 의원 유지는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것 또한 그의 정치 행위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 용혜인을 이번에 지키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에 마음을 두고 한국 정치를 봐야 할지 한 치 앞이 보이질 않는다.

조재원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