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울산포럼]AI모델보다 현장 데이터…울산, ‘60년 제조 암묵지’ 깨워야

데이터 표준·상설 테스트베드·숙련자 AI 교육 관건 산업안전 기술, 돌봄·응급의료 등 시민 생활로 확대

2026-09-13     강태아 기자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2026 울산포럼’에서 (왼쪽부터) 김덕진 IT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 김형수 울산시 AX정책관, 조익환 SKT 피지컬AI 본부장, 김병화 현대자동차 상무, 김준하 디든로보틱스 대표, 김재성 인터엑스 CBO가 ‘울산 제조업의 AX 가속화를 위한 Physical AI 정책 방안’을 주제로 첫 번째 세션 패널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2026 울산포럼’과 연계해 열린 ‘2026 울산세계미래산업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고 전시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울산의 미래상으로 제시한 ‘AI시티’를 현실로 옮기려면 제조현장의 데이터와 숙련자의 경험을 AI가 배울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실제 공장에서 검증할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2026 울산포럼에서 나왔다.

제조 AX 세션에서는 데이터 표준과 실증공간, 현장형 인력 확보가 주요 과제로 꼽혔다. 시민 생활을 다룬 세션에서는 산업현장의 AI를 안전·건강·돌봄으로 넓히고 흩어진 정보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울산의 경쟁력은 AI모델보다 제조현장

울산의 강점으로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제조현장과 이곳에 축적된 공정 데이터, 숙련자의 경험이 꼽혔다. 범용 AI 모델을 울산의 산업에 적용하려면 실제 제조데이터를 학습시키고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민우 산업통상부 산업성장실장은 “울산의 자동차·조선·석유화학 현장은 모델의 성능을 검증하고 고도화하는 핵심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며 “현장의 암묵지(tacit knowledge, 개인의 경험, 직관, 기술, 노하우 등에 내재돼 있어 말이나 글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를 국가의 AI 자산으로 전환해 한국 제조업만의 지능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2026 울산포럼’과 연계해 열린 ‘2026 울산세계미래산업박람회’ 전시장을 둘러보고 전시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데이터는 있지만 AI가 바로 쓸 수 없다

공장에 데이터가 많다고 AI가 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데이터는 AI 학습을 전제로 수집되지 않아 형식이 맞지 않거나 추가 수집과 가공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데이터 형식과 관리 방식도 다르다. 한 공장에서 개발한 AI를 다른 공장이나 협력업체에 적용하려면 데이터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공정·품질·설비 데이터가 영업비밀과 연결돼 있어 공유도 쉽지 않다.

김덕진 IT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현장을 막고 있던 것은 기술보다 데이터였고, 데이터를 막고 있던 것은 기준과 표준이었다”고 정리했다. 핵심 기술은 보호하되 공통으로 활용할 데이터의 범위와 보안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장은 멈출 수 없다…상설 실증공간 필요

개발한 AI와 로봇을 생산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도 없다. 공장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시험하려고 생산라인을 장시간 멈추기 어렵고 안전성과 투자 대비 효과도 확인해야 한다.

포럼에서는 가상환경에서 AI와 로봇을 학습시킨 뒤 실제 공장과 비슷한 공간에서 검증하고, 마지막으로 생산현장에 적용하는 3단계 실증방안이 제시됐다. 실제 공장에서 만들기 어려운 사고·고장 데이터는 가상환경에서 합성해 현장 데이터와 함께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패널들은 기술 개발보다 공장에서 시험하고 승인을 받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며 반복 검증이 가능한 상설 테스트베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수 울산시 AX정책관은 내년부터 AI 실증센터 한두 곳을 구축하기 위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6 울산포럼’이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개최된 가운데 이민우 산업통상부 산업성장 실장이 ‘지역거점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제조 AX 추진 방향’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개별 실증을 산업 전체로 확산해야

SK에너지 울산CLX는 작업허가서와 위험성 평가, 작업자 위치정보를 디지털화한 ‘쉴드 AI’를 구축하고 있다. CCTV와 5G 특화망, 사족보행 로봇과 드론을 연계해 위험지역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구상이다.

디든로보틱스는 선박 블록 내부의 좁은 공간을 이동하며 용접하는 보행로봇을 선보였다. 현대자동차 측은 가상환경에서 설비와 로봇 프로그램을 검증한 뒤 실제 생산설비에 적용하는 미래 공장을 제시했다.

이민우 실장은 정부의 M.AX 정책을 통해 검증된 AI를 같은 기업의 다른 생산라인과 유사 공정, 협력업체와 산업단지로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개별 공장의 실증이 공급망 전체의 생산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숙련자를 AI 전환의 주체로

인력 문제에 대해서는 외부 AI 전문가를 울산으로 데려오기보다 제조현장을 아는 숙련자에게 데이터와 AI 기술을 가르치는 편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김재성 인터엑스 CBO는 “수도권 AI 인재를 울산으로 데려오는 전략은 비용 대비 성공률이 낮다”라며 “제조 경력자에게 데이터와 AI 경험을 더했을 때 성과가 훨씬 좋았다”라고 말했다.

숙련자가 퇴직하기 전에 작업 과정과 판단 기준을 데이터로 남기지 않으면 수십 년간 축적된 암묵지도 사라질 수 있다. 용접 작업자가 로봇에 작업 방법을 가르치고 성능을 확인하는 것처럼 숙련자를 AI 전환의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덕진 소장은 “피지컬 AI의 첫 임무는 사람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우고 위험한 자리를 대신 가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2026 울산포럼’에서 (왼쪽부터) 이순열 큐네스티 대표, 윤혜진 아이티공간 부사장, 제영준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본부장, 김지훈 돌봄드림 대표, 박시은 달구 대표가 ‘일상의 AX, 울산의 Smart Local 실행 전략’을 주제로 두 번째 세션 패널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산업안전 AI, 시민 생활로 넓힌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산업현장에서 검증한 AI를 시민 안전과 건강, 돌봄에 적용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IT공간은 산업설비의 전류에서 미세한 이상 신호를 찾아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을 공공시설과 전통시장으로 넓히고 있다. 공장 설비와 시장 분전반 모두 위험이 발생하기 전에 전류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는 점에 착안했다.

돌봄드림은 어르신의 심박·호흡·수면·활동량을 분석해 평소와 다른 변화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소개했다. 김지훈 대표는 “AI가 모든 어르신을 대신 돌볼 수는 없지만 오늘 먼저 확인해야 할 사람을 골라줄 수 있다”라며 “AI의 역할은 돌봄의 우선순위를 잡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에서는 구급차와 병원 사이의 정보 단절이 문제로 제기됐다. 박시은 달구 대표는 환자의 생체정보와 병력, 복용약 등을 병원에 미리 보내야 수용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실증한 뒤 공공조달이나 구매로 이어지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데이터 활용 기준이 불명확하고 실증으로 사업이 끝나면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경상 SK텔레콤 AI CIC장이 ‘울산 시민을 위한 모두의 AI’ 주제로 특별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답변 넘어 실행하는 ‘모두의 AI 울산’

유경상 SK텔레콤 AI CIC장은 공공·복지 혜택과 생활정보를 개인별로 제공하고 행정·교통·의료·교육 서비스를 연결하는 ‘모두의 AI 울산’을 소개했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 아니라 일정과 위치를 반영해 필요한 정보를 먼저 알려주고 병원 예약이나 지원사업 신청까지 처리하는 실행형 AI 에이전트다. 앱 사용이 어려운 고령층과 디지털 취약계층은 전화와 문자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유 CIC장은 “오늘 소개한 AI 에이전트의 첫 번째 버전을 올해 12월 안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울산시 행정정보와 울산페이, 교통·의료기관 등 개별 서비스의 연계 범위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개인정보 활용 범위와 AI의 예약·결제 권한, 이용자가 모르는 결제와 해킹을 막을 신뢰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유 CIC장은 이용자 동의를 받고 민감정보를 별도로 보관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2026 울산포럼’에서 클로징 스피치(Closing Speech)를 하고 있다. 이수화 기자
최 회장은 “제조 AI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규모 있는 데이터 플랫폼이 없다면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데이터를 모으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사업구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두 세션의 과제는 연결로 모아졌다. 제조현장의 데이터와 숙련자의 경험을 AI에 연결하고, 검증된 기술을 시민의 안전·돌봄·의료 서비스로 넓히는 것이다. 이 연결이 실제 공장과 시민 생활에서 작동하는지가 ‘AI시티’ 구상을 평가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