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노장은 죽지 않는다
수십년 몸으로 익힌 노하우 귀한 자산 나만의 역량 지역사회 나눔 가치 실현 세대 초월 협업 시너지 인생 2막 응원
"한 달에 600시간을 일했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600시간이라니. 하루 20시간씩 꼬박 30일을 채워야 나오는 수치다. 지금의 근로 개념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말을 들려준 이는 현대중공업 초창기를 누빈 팔순의 노장이었다. 곁에 있던 대한민국 명장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거들었다. "우리 때도 500시간 이상 했습니다."
숫자 뒤에는 한 시대가 있었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이 숨 가쁘게 성장하던 시절, 그 무대 가운데 하나가 중동 건설판이었다. 198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간 한국인들은 한낮 기온이 40℃를 훌쩍 넘는 사막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술도, 돼지고기도 없고 퇴근 후 즐길 거리도 변변치 않은 낯선 땅. 그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는 말 그대로 ‘돈 벌러 간 나라’였다.
고생을 감수한 이유는 분명했다. 국내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고, 악착같이 모은 돈은 귀국 후 집을 마련하고 자식을 공부시키는 종잣돈이 됐다. 가족과 떨어져 보낸 청춘의 대가였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고생담보다 자부심을 먼저 꺼냈다.
"그때 그런 기회가 있었던 게 감사하지." 짧은 한마디에서 아버지 세대의 삶이 읽혔다.
'600시간'에도 당시의 독특한 노동문화가 숨어 있었다. 지금의 법정근로시간을 그대로 대입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정해진 몫을 빨리 마치면 하루 일을 끝내거나 작업량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는 방식도 있었다고 한다. 산정법은 지금과 달랐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강도로 일했다는 사실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중동에서 흘린 땀은 한 가족의 살림만 일으킨 것이 아니다. 해외 건설로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성장의 소중한 동력이 됐다. 국내에서도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하고 공장을 세우며 수많은 이들이 산업화의 한복판을 달렸다. 우리는 그 세대를 '산업역군'이라 불렀다.
특히 울산은 이들의 땀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도시다. 오늘의 조선·자동차·석유화학 산업도 수많은 노동자의 굳은살 위에서 성장했다.
얼마 전 이들을 취재하다 재미있는 문구 하나를 발견했다.
'경력 153년.'
홈페이지 첫 화면에 떡하니 적혀 있었다. 네 사람이 평생 쌓아온 이력을 합친 숫자였다. 제2의 창업 이후 세월이 보태져 이제는 160년을 넘어섰다. 칠순의 대한민국 명장에게 기계와 설비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몸으로 익힌 감각은 매뉴얼 몇 권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퇴도 이들에게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평생 갈고닦은 솜씨를 들고 다시 창업과 재취업에 뛰어들었다. 사회연대경제에 합류해 자신의 역량을 다음 세대와 나누며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단순한 노인 일자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보유한 귀중한 산업자산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청년에게 디지털과 새로운 발상이 있다면 노장에게는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체득한 노하우가 있다. 두 세대가 손을 잡는다면 그보다 든든한 협업이 또 있을까.
취재를 마치며 '600시간'을 다시 떠올렸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다시는 그렇게 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은 다행이다. 그렇다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라의 성장을 떠받친 세대의 노하우까지 함께 퇴직시켜서는 안 된다.
사막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청년들은 어느덧 백발이 됐다. 그러나 손끝에는 여전히 솜씨가 남아 있고 머릿속에는 수십 년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경력 160년을 품은 이들이 또 다른 출발선에 섰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평생 갈고닦은 솜씨를 다시 펼칠 무대를 만날 뿐이다.
대한민국 산업역군들을 위해!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시 블로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