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교실 속 작은 여행
가정체험학습 해외여행기 호기심 반짝 간식 나눠 먹으며 동남亞 속으로 ‘풍덩’ 흥미진진 이야기에 웃음 가득 번진 교실
“선생님, 오늘 서아 왜 안 와요?”
“나 알아! 서아 가족들이랑 여행 간댔어.“
서아의 빈자리를 보고 한 친구가 던진 질문에 다른 한 친구가 알은척하며 대신 대답을 한다.
‘맞다, 오늘부터 서아 가정체험학습이었지.’
신청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4월에 동남아라니, 저렴하고 한적하게 잘 다녀오겠구나.’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묘한 생각이 스친다.
가정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수업 일수를 채우며 당당하게 떠나는 해외여행. 정작 아이가 아파서 학교를 빠질 때는 질병결석 기록이 고스란히 남는데, 여유 있는 가정의 체험학습은 출석으로 온전히 인정받아 개근의 영광까지 챙겨준다. 교육적 경험을 넓혀준다는 취지는 좋지만, 제도의 이면에 도사린 은근한 불공정함이 교사의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찌른다.
며칠 뒤 서아가 까매진 얼굴로 돌아왔다.
“오, 서아! 잘 다녀왔어?”
서아가 씩 웃으며 간식 가방을 교탁에 올려놓는다.
“엄마가 이거 친구들 주랬어요.”
망고 맛 젤리 한 봉지가 노란 빛깔을 뽐낸다.
“이런 걸 다 챙겨주시고 감사하네. 이따가 아이들 모두 오면 네가 직접 나눠주자. 체험학습보고서는 잘 올렸지?”
제출한 보고서를 보니 현지에서 찍어온 다채로운 체험 사진들이 여럿 들어있다.
“우와, 이 정도면 아이들 보여주면서 발표해도 좋을 것 같다. 이따가 수업 시간에 아이들 한번 보여주자.”
예전에 한 신문기사에서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해외여행 가본 사람 손 들어보세요” 라고 했다가 ‘해외여행 안 가본 우리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며 학부모에게 고발을 당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스친다. 수업 시간에 체험학습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달라고 하다니 내가 너무 간 큰 교사인가 싶다가도 이런 기회를 통해 간접경험을 해보는 것도 교육이라 믿기에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을 건넸다.
“친구가 여행 다녀온 얘기를 같이 들어봅시다. 자랑이 아니라 경험해 본 걸 함께 나누는 거예요. 난 거기 못 가봤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들어봐요. 우리라고 못 갈 것 없으니 가고 싶으면 언젠가 꼭 가보기로 해요.”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서아가 망고 젤리를 하나씩 나눠주자 아이들이 “고마워” 하며 받고는 신나게 맛을 본다. 그 와중에 “전 젤리 안 먹어요” 하며 거절하는 아이도 있다. “그럼 나 줘!” 하는 주변의 하이에나 같은 아이들을 제지하며 그 아이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가도록 중재하고 소란을 가라앉힌다.
서아가 다녀온 곳은 담임인 나도 처음 들어본 ‘코타키나발루’였다. 교실 화면에 보고서 사진을 띄우고 아이들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선생님: 거기가 어딥니까?
서아: 어디더라...동남아 어디였는데
친구들: 베트남! 태국! 필리핀!
선생님: 구글 지도를 찾아보겠습니다. 아하, 말레이시아군요. 그곳 날씨는 어땠나요?
서아: 더웠어요.
선생님: 여러분도 궁금한 것들 물어보세요.
친구들: 무슨 음식이 맛있었나요? 영어로 대화했나요? 누구랑 갔나요? 뭐가 제일 재미있었나요?
처음에는 쭈뼛대던 아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이어갔다. 머리에 헬멧 같은 걸 쓰고 물 속을 걷는 ‘씨워크’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바닷 속에서 봤다는 생물들도 함께 검색해보며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나눴다.
따분하던 교실에 코타키나발루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이 슬쩍 들렀다 간다. 출결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씁쓸함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언제고 선생님도 한번 가봐야겠다. 아이들도 기억 한 편에 이 세상 곳곳에 대한 호기심을 끼워두었다가 각자의 인연이 닿을 때 멋지게 떠나보길 바란다.
서아가 가져온 망고 젤리의 감질나는 맛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나 그들의 삶이 가득가득 채워지면 좋겠다. 김은진 개운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