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93m 담은 ‘3776m 후지산’…세계유산을 ‘경험’하게 하다
[창간기획_세계유산 활용 시험대 오른 U-반구천 암각화, 브랜드 전략은?] ③ 일본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후지산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모양의 세계유산센터 내부로 들어섰다. 1층부터 시작된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자 오른쪽 벽면에 후지산의 사계절을 담은 타임랩스 영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해발 0m 바다에서 시작된 영상은 발걸음에 맞춰 차츰 고도를 높여간다. 정겨운 마을을 지나 울창한 숲을 통과하고 거친 암석지대를 거쳐 어느새 발아래 구름이 아득히 깔린다. 동시에 ‘사각, 사각’ 발자국 소리와 바람 소리가 귓가를 감싸면 실제 후지산을 오르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진다. 5층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자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193m의 긴 여정이 끝나자 눈앞이 환하게 밝아오고 그 빛을 따라 전면 통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기는 순간, 진짜 후지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건물 자체가 또 하나의 볼거리
후지산은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예로부터 산악 신앙의 대상이자 수많은 예술작품에 영감을 준 문화적 가치를 높게 인정받은 결과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후지산의 보존과 가치 확산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세계유산조약은 유산의 보호와 보존을 위한 전문 연구·교육 기관 설립을 권장하고 있어 시즈오카현은 세계유산센터를 기획했다.
설계 공모에는 135개 안이 응모했고, 설계자로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씨가 선정됐다. 그는 후지산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형태의 건물을 제안했다. 특히 건물 앞 잔잔한 수면 위로 그 모습이 그림처럼 투영되도록 설계해 물에 비친 형상이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후지산이 완성되도록 했다. 건물 외벽으로는 후지산 기슭의 편백나무를 격자무늬로 엮어 감쌌다. 이 독창적인 구상으로 탄생한 시즈오카현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2017년 문을 열었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 관계자는 “후지산은 화산의 이미지가 강해 ‘불’을 떠올리기 쉽지만, ‘물’을 이미지화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어 선정됐다”라며 “후지산 기슭의 용출수를 끌어와 전면 수면에 비치면 거꾸로 된 건물의 모습이 실제 후지산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지역의 물과 목재 등의 순환과 역후지의 반영을 나타냈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압도적인 외관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9월 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센터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려는 방문객들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곽승열(55)씨 가족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 여행 첫날 일정으로 이곳을 찾았다는 가족들은 연신 “멋있다”며 감탄했다. 곽씨는 “실물이 훨씬 인상적이고 눈길을 끈다”라며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세계유산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처럼 상징적인 건축물이 생기면 일부러라도 찾아가고 싶을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한국인 관광객 김태일(41) 씨도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건물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렇게 독특한 공간이 국내에도 생기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데도 훌륭한 역할을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193m 경사로에 담아낸 3776m 후지산
이 유산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거꾸로 된 후지산을 형상화한 독특한 건물 구조를 활용해 내부에서는 관람객이 마치 직접 ‘등산’을 하는 듯한 체험을 즐기도록 동선을 구성했다는 점이다.
센터 관계자는 “시설 설계 단계부터 방문객이 후지산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전시를 계획했다”라며 “이를 위해 나선형 경사로를 만들고 한쪽 벽면에 후지산 등산 풍경을 상영해 실제 산을 오르는 듯한 가상 등산 체험을 할 수 있는 ‘오르는 산’을 구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체험 덕분에 관람객들로부터는 ‘나이나 체력 때문에 등산이 어려웠는데 체험 덕분에 진짜 후지산 정상에 오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날씨 때문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등의 의견을 듣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핵심은 해발 0m인 스루가만 바다에서부터 후지산 정상(3,776m)까지 실제 등반객의 시선으로 담아낸 4K 타임랩스 영상이다.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입체적인 연출 덕분에, 일반적인 등산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과 비경까지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1층부터 이어진 경사로를 걸으며 차곡차곡 쌓아 올린 가상 등반의 몰입감은 5층 전망 홀에 다다르는 순간 절정에 달한다. 193m의 여정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대형 통유리창 너머로 진짜 후지산이라는 실체가 시야를 가득 채우도록 설계한 것이다. 센터 관계자는 “최상층 전망 홀에는 진짜 후지산을 한 장의 그림처럼 볼 수 있는 ‘픽처 윈도우’를 설치해 사계절의 다양한 얼굴을 한 액자 속 후지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후지산 세계유산센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세계유산을 소개하는 차별화된 방식이다. 유산의 가치와 역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의 건축 구조와 전시 동선 그 자체를 활용해 방문객이 후지산을 ‘걷고, 오르고, 바라보게’ 만들었다.
#설명보다 ‘경험’에 방점
후지산 세계유산센터가 지닌 또 하나의 경쟁력은 ‘연구기관’으로서의 본질에 있다. 센터에는 시즈오카현에 고용된 5명의 전임연구원이 상주하며 센터 운영과 학술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이들은 1년에 4~5차례 각자의 연구 주제와 성과를 바탕으로 번갈아가며 기획 전시를 선보인다. 매번 새로운 주제로 교체되는 전시는 센터를 다시 찾게 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후지산의 역사와 자연,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 성과는 기획전은 물론 관내 강좌와 출장 강의, 세미나, 학술지(Kiyo) 발간 등을 통해 도민과 일반 대중에게 공유한다.
조사·연구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위해 시즈오카현은 이들을 비상근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덕분에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센터를 찾은 시찰단을 직접 안내하고, 일반 관람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갤러리 토크’ 등 행사 기획과 강연도 운영한다.
이처럼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깊이 있는 학술 연구라는 뿌리 위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와 체험을 더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일 년 내내 후지산의 역사, 문화,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기획전과 공개 강좌를 열어 재방문 관람객들도 늘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라며 “후지산의 보편적인 가치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일반 관람객 여러분이 넓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텍스트 설명은 최소화하고 시각적 연출 중심으로 해설이 없어도 누구나 직관적으로 가치를 체감하도록 했다. 그래서 다채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센터 2층에 마련된 방명록에는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후지산을 바라보며 느낀 다양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거운 마음은 여기에 놓고 희망만 가지고 가겠다’, ‘우리집에서 보여서 언제나 힘을 받고 있다. 멋진 풍경을 보여줘 감사하다’는 글처럼 센터는 각자의 방식으로 후지산을 경험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가 되고 있었다.
후지산 세계유산센터가 보여준 것은 세계유산을 대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과 전시, 연구와 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방문객이 직접 보고 걷고 느끼도록 했다. 연구자가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이야기가 전시와 체험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유산의 가치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었다.
울산도 반구천이 품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다. 반구천의 유구한 세월과 바위에 새겨진 숨결을 온전히 ‘느끼고 마주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공간과 스토리텔링이 완성될 때 세계적인 문화 거점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반구천을 찾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기억하며 돌아갈 것인지. 이제 반구천만의 경험을 만들어낼 차례다.
글=신섬미 기자 01195419023@iusm.co.kr
사진=신원윤 PD digital@iu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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