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로즈메리 삽목기

로즈메리가 가르쳐준 ‘키우는 법’ 당장의 성과와 변화 따지지 말고 아이 스스로 뿌리내릴 시간 지켜봐

2026-09-28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

작년 이맘때쯤, 가을 텃밭 준비해 놓고 남은 땅에 무얼 심을까 고민하다가 로즈메리를 심었더랬다. 손바닥만 한 모종 서너 포트를 수국 화단 끄트머리에 심었는데 심은 티도 나지 않았다. 살 테면 살고 죽을 테면 죽겠지, 하는 마음으로 강하게 키우겠노라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아서 매번 어찌 있는가 들여다보며 지냈다. 겨울이 왔고 녀석들이 누렇게 말라가는 것을 보다가 긴 겨울 방학을 맞았다.

겨울 끝자락에 다시 찾은 녀석들. 살아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추웠던 날들, 한기와 칼바람 속에서 생짜로 몇 달을 지냈으니 목숨줄 붙어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생로병사의 길을 짧게 걸어간 것일 뿐 너희도 할 건 다했다, 애썼다, 속으로 전한 그 말들 그들이 들었을 리 없다. 겨울 버틸 비닐 한 장 덮어주지 않은 내 무지에 대한 미안함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소리 없이 달라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길 주기 미안해서 일부러 보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3월은 정신없이 바쁜 달 아닌가. 대기에 제법 훈기가 돌고 꽁꽁 언 코끝이 말갛게 풀어질 때에야 나는 녀석들이 푸릇하게 고개 내밀고 있음을 발견했다. 갈색으로 꺾인 몸통 옆에서 슬며시 일어난 그 초록들이라니. 로즈메리의 향이 물큰, 그 작은 몸통에서 퍼져 나왔다.

봄 여름을 지난 녀석들은 이제 제법 키가 크다. 1학기에 몇 번이나 줄기를 잘랐는데도 쑥쑥 많이도 자랐다. 잘라서 씻고 말린 로즈메리는 허브솔트가 되어 어느 집 신발장 안으로 들어가 방향제로 기능하기도 하고 어느 집에선 식탁 위로 올라가 향긋한 양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밀봉해 둔 말린 로즈메리는 조만간 설거지바 만들기 수업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기도 하고.

지난주에 새로 오르는 가지들을 살펴보며 녀석들이 뿜어내는 싱싱함에 잠깐 취해있었다. 가만 보는데 땅 쪽으로 너무 기운 것들이 있었다. 그 가지들을 정리하며 문득 이걸 심으면 자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로즈메리는 삽목으로도 잘 자란다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옳다구나 싶어 몇 줄기 잘라서 끝잎을 털어내고 물을 묻혀서 땅에 꽂았다. 잘 자라라, 잘 자라라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주말 지나고 등교하자마자 녀석에게로 갔다. 시커멓게 죽은 건 없었지만 대체로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깊게 심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 기우뚱한 것도 있었고. 뿌리도 밑동도 없이 잘린 채로 살아가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인 걸까. 분명히 이렇게도 잘 자란댔는데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었을까. 원래의 로즈메리는 하루가 다르게 싱싱하게 뻗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뿌리는 나고 있으려나 싶어 살짝 뽑아보려다가 아차 싶었다. 제힘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흙과 물과 햇빛, 바람이 녀석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불안했던 것이다. 뿌리도 못 내리고 있을까 봐, 그래서 양분도 물도 못 빨아 먹고 지쳐버렸을까 봐, 그러다 바싹 말라서 죽어버릴까 봐 겁이 났던 거다.

불안은 키우는 일의 맞은편에 서 있다. 잘린 상처에서 뿌리가 돋고 제힘으로 오롯이 서기까지 내가 더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는 일이다. 내 뱃속을 빠져나와 탯줄을 끊고 독립적인 생명체로 자라고 있는 내 아이를 보는 일도 그렇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겉보기도 심상치 않다. 기우뚱하게 누운 폼이 수국 화단 귀퉁이에 비스듬하게 꽂힌 로즈메리 가지 같기도 하다. 하지만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는 불안은 스스로의 검열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깊숙하게 숨기고 설렘과 믿음으로 잘 덮어 두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학교 환경에 삽목된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다를 건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 뻗으려고 애쓰고 있을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기다리는 일 말고 중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 당장의 성과, 가시적인 변화를 따지며 흙을 들춰 뿌리를 확인하는 일은 불안의 불손한 속삭임일 뿐이다. 시들시들해진 잎에 문득 생기가 돌고 모체 옆에서 제 향을 폴폴 풍기며 굵어질 로즈메리의 날들을 기다린다.

이은영 울산행복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