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한국화학연구원 ‘창립 50주년’
1976년 설립 화학연…울산과 20년 인연 국가 산업 지킨 연구성 지역으로 이어져 미래 지식기반 도시 도약의 힘 되기를
50년은 반백년의 짧지 않은 역사다. 1976년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 화학산업 발전을 이끌어 온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이 지난 9월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화학硏은 석유화학, 첨단소재, 의약, 정밀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리고 필자가 울산에 화학硏 지역조직을 만들기 위해 단신으로 내려온 지 어언 20년이다.
화학硏은 산업계가 뜻을 모아 설립한 민간주도형 연구소로 역사를 시작했다. 1973년 중화학공업 정책 육성 선언 이후, 급증하는 기술 수요에 대응하고 기술과 소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1976년 136개 기업을 대표하는 17개 기업이 설립자총회를 열고 ‘한국화학연구소’를 정식 발족했다. ‘화학기술의 자립(自立)’이라는 지상 목표 아래, 서울 종로구의 작은 임시 사무소에서 출발한 연구소는 이듬해 대전 대덕의 허허벌판에 터를 잡았다. 1978년 제1호관을 건립하며 ‘오직 우리 손으로 산업 기술을 만들겠다’는 꿈을 향해 야무지게 발을 내딛었다.
산업화 초기의 화학硏 과제는 수입대체였다.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 중동전쟁으로 촉발된 석유위기는 원료와 에너지 소비가 많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연스레 자원 소모를 줄이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정밀화학산업 육성이 필요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를 제5차 경제개발계획에 반영했고, 화학硏도 1982년부터 정밀화학 분야 연구개발 비중을 확대했다. 성과는 생활과 산업현장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1984년 삼천리와 함께 활성탄을 개발했고, 산소계 표백제 ‘옥시크린’은 옛 동양화학공업을 통해 실용화돼 지금까지 약 1조원의 누적매출을 기록했다.
그 후로도 화학硏은 위기마다 화학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1994년 폴리부텐 제조공정과 2005년 고기능성 폴리이미드 소재 등의 핵심 기술을 연달아 국산화했다. 의약 및 농약 분야에서는 1996년 국산 1호 신농약 ‘선봉’, 2004년 세계 최초의 이미페넴 항생제 복제약 ‘프리페넴’, 2021년 에이즈 치료제 ‘아이노베린’ 등의 신물질을 연이어 창출했다. 화학硏은 국가적 비상시기에도 적극 나서 이를 해결했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국면에서는 불소계 소재 제조공정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공급망 안정을 이끌었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신속 진단키트를 개발해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조성 초기 순수 연구·학원도시로 출발했던 대덕연구단지는 2005년 신기술 창출과 사업화 촉진을 주 기능으로 하는 ‘대덕연구개발특구’로 공식 출범하며 혁신 클러스터로 재도약했다. 오늘날 대덕연구개발특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R&D(연구개발)의 심장이다. 그리고 울산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경제의 심장’ 아닌가. 장치산업이 대부분인 울산은 미래 지식기반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국책연구기관을 유치하려고 했고, 그 첫 번째 주자가 바로 화학硏이다.
지금은 2012년에 개소한 정밀화학연구센터와 2016년에 문을 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등에서 200여명의 직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사회문제를 해결할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출연연 지역조직은 지자체와 협력하여 그 지역 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 주요사업 성과만 챙기면 지역조직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오늘의 화학硏이 있기까지 걸어온 모든 길에는, 언제나 국민의 관심과 응원이 함께했다. 세상이 답을 찾지 못하던 순간마다 화학硏이 화학으로 도전에 대응하여 해답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신뢰와 격려를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의 성원 덕분이다. 이제 지난 50년의 성취를 발판 삼아, 녹색화학 기술로 국가와 인류가 직면한 난제에 답하고, 아울러 지속가능한 미래를 함께하기 위해 더 높이 웅비(雄飛)하려고 한다. 한국화학연구원의 힘찬 도약과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여정에 따뜻한 격려를 부탁드린다.
이동구 울산대학교 초빙교수·한국화학연구원 명예연구원·AX 얼라이언스 위원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