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정동영의 입과 군사분계선의 지뢰밭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지뢰도발 우리는 책임공방에 혼선의 연속 주무장관 태도에 북, 도발 정당화

2026-10-11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대략난감이다. 북이 몰래 묻어 둔 지뢰에 우리 장병의 발목이 잘렸지만 싸움은 우리끼리 난리다. 백두혈통의 한줄기가 흐른다고 목청을 돋구는 김여정은 연일 남쪽을 향해 삿대질이다. 남과 북이 연일 초극음속 미사일을 쏘아올리며 "까불지 마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 마당에 우리 외교는 방향을 잃었다. 여당 대표를 지낸 정청래는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번졌다. 지뢰가 터지고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우리 장병 3명이 피를 흘린 이후 한달동안 벌어진 초유의 외교안보 상황이다.

 책임공방도 있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인 지뢰는 북한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묻어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군과 유엔군사령부가 조사해 확인한 사실이다. 북한은 자작극이라며 연일 핏대를 세우지만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우리 군의 입장과 국방장관의 입장, 외교부와 대통령의 입장이 서로 애매한 상황이 됐다. 여기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아예 대놓고 북한의 공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뢰는 북한이 묻었고 피는 우리 장병이 흘렸다. 그런데 정작 남쪽에서는 공격이냐 사고냐를 놓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DMZ에서 폭발한 것은 북한의 수지반보병지뢰였다. 유실돼 떠내려온 지뢰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매설된 지뢰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결론도 나왔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장관인 정동영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지뢰 공격으로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대북 독자제재에도 반대했다. 평화공존 정책과 제재는 양립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북한이 지뢰를 묻고 우리 장병이 다쳤는데 책임을 묻는 일부터 주저한다면 평화공존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정동영의 입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정은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자 정 장관은 ‘평화적 두 국가’를 주장했다.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조선’으로 부르자고 했고, 남북관계를 ‘한조 관계’라고 표현했다. ‘주적’이라는 말은 ‘위협’으로 바꾸자고 했으며, 탈북민 대신 ‘북향민’이라는 용어도 제안했다.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북한 국호 문제를 꺼냈다가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발언에 신중하라는 주의까지 들었다.

 군사분계선에 관한 발언은 더 아슬아슬하다. 정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유엔사와 북한이 군사분계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한국이 초기 논의에서 빠지더라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면 의미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존 경계선의 위치를 확인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경계를 확실하게 하자는 말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정동영은 놓치고 있다. 군사분계선은 우리 장병이 서고 국민의 안전이 걸린 공간이다. 대한민국의 참여와 입장을 어떻게 보장할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정동영 장관은 툭하면 대화와 교류를 이야기 한다. 그에게 대화와 교류는 절대적 명제로 보인다. 물론  적대를 줄이고 충돌을 막는다는 믿음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 장관은 금강산 관광객이 오가고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출퇴근하던 시절에는 이런 지뢰 폭발이 없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평화론을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그 시절에도 평화와 공존, 그리고 화해만 있지 않았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이 있었고, 2010년에는 천안함과 연평도의 비극이 있었다. 2015년 목함지뢰 사건은 우리 장병 두 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개성공단이 가동되던 때였다. 교류가 군사적 위협을 저절로 없애준다는 믿음은 역사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 평화의 기억만 선택하고 도발의 기록을 지운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궤변이다.

 정동영의 발언에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여정은 정 장관의 대화 제의를 망상과 넋두리라고 일축했다. 의료장비 지원 구상도 주권침해라고 비난했다. 지뢰 폭발은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우겼다. 급기야 정 장관이 북한의 고의적 공격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한 대목을 자신들의 주장에 이용했다. 우리측 장관이 아니라는데 왜 자신들이 지뢰를 묻었다고 주장하냐며 이번엔 아예 삿대질이다.

 정동영의 일방통행식 평화론은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 않다.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이번 지뢰사건을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했다. 부상 장병과 가족을 위로하면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대화 복원을 강조했다. 당시와 이후 조사 발표의 시점은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지뢰 매설과 정전협정 위반이 확인된 뒤에는 정부의 설명도 분명해져야 한다.

 정동영과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인연은 오래됐다. 이 대통령은 2007년 정동영 팬클럽 ‘정통들’의 초대 회장이었고 대선 캠프에서도 활동했다. 이후 정동영은 이재명 정부의 통일부 장관으로 돌아왔다. 오랜 정치적 신뢰가 인사의 배경으로 거론되지만, 그것이 정책적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군 통수권자는 장병의 안전과 국가의 대응 원칙을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의 관계로 규정하고 군사분계선 일대를 요새화하고 있다. 철책을 세우고 지뢰를 묻는 현실 앞에서 남쪽의 희망만으로 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다.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가 문을 닫고 위협을 반복할 때의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 국민이 묻는 것은 보복의 크기가 아니다. 북한의 위반에 어떤 원칙으로 대응하고 그 원칙을 어떻게 관철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평화라는 목표가 책임을 묻지 않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 장면에서 정동영 장관에게 묻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평화를 더 크게 외치는 목소리인지, 아니면 책임을 관철할 구체적인 해법인지를 밝혀야 한다. 북한의 호칭을 바꾸고 남북관계의 이름을 새로 붙인다고 군사분계선의 지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현실보다 이념을 앞세우고 정책의 체면을 지키느라 책임을 흐린다면 그 확신은 또 다른 위험을 키운다. 지뢰보다 더 위험한 이념의 시한폭탄은 그렇게 작동한다. 평화는 책임을 피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