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광중 스물두 명, 오늘의 통신사
두광중 전교생 조선 통신사 길 탐방 이예 부자 조선 백성 구한 헌신 숭고 역사 대면해 스스로 답 찾아 나가길
10월 7일자 울산매일신문에서 두광중학교 학생들의 특별한 수학여행 소식을 읽었다. 울주군 두광중학교의 전교생 22명은 9월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일본 오사카·교토·나라를 찾았다. 주제는 '두광중, 통신사 이예의 길에 서다'였다. 작은 학교가 600년 전 울산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바다를 건넜다.
이예(1373~1445)는 울산 출신 외교관이다. 여덟 살 때 왜구에게 어머니를 빼앗겼다. 어른이 된 그는 국가의 명을 받아 일본을 오가며 외교 임무를 수행했고, 왜구에게 끌려간 조선 백성들을 데려오는 일에도 힘썼다. 1422년부터 1432년까지 네 차례 통신사로 교토에 갔고, 다른 사행까지 합하면 40여차례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가 쇄환한 조선인은 667명에 이른다.
어머니를 빼앗아 간 나라에 평생 수십 차례나 건너간 사람. 이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가 일본을 오간 것은 무엇보다 임금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였지만, 어머니를 찾고 싶은 마음도 거듭 바다를 건너는 그에게 힘이 되었을까? 그는 어머니와 다시 만나지 못했으나 외교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가족을 되찾아 주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이예와 아메노모리 호슈를 양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소개했다. 호슈는 이웃나라와 교류하려면 먼저 상대의 역사와 문화, 관습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유학자이며 외교관이었다. 신문은 두 사람의 지혜를 돌아보며 "협소한 내셔널리즘이나 승부를 겨루는 듯한 헛된 대항의식"을 버리고 "외교의 유연성"을 지향할 것을 주문했다.
사설은 이예의 후손인 이창열 전 일본삼성 사장의 말도 소개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겠지만, 이러한 불행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전력을 기울였던 것이겠지요." 물론 이예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 비극을 겪고도 사람들을 구하고 두 나라의 관계를 이어 가는 일에 평생 진력한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은 비행기 대신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출국했다. 통신사도 한양에서 울산을 거쳐 부산에서 배를 탔다. 오사카까지는 뱃길, 그로부터는 육로였다. 학생들도 그 길을 따라 교토에 닿았다. 오사카에서는 통신사의 숙소였던 기타미도를 찾고, 나라에서는 호류지와 도다이지를 둘러보며 백제와 일본의 문화교류를 살폈다.
교토에 닿은 학생들은 9월 29일 오전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교토부지방본부 앞뜰의 이예 동상에 참배하고, 오후에는 아들 이종실의 위패가 있는 천룡사(텐류지)를 찾았다.
이종실도 통신사였다. 1459년 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가던 중 대마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 정사 송처검을 비롯한 일행 100여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조선의 요청을 받은 일본 쇼군은 실종자를 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텐류지에서 송처검과 이종실을 위한 불교 의식을 거행하게 했다. 위패에는 '정사 송처검, 부사 이종실, 해난을 당한 통신사 일행의 영위(靈位)'라는 뜻의 한자가 새겨져 있다.
아버지 이예는 바다를 건너 사람들을 데려왔고, 아들 이종실은 그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학생들은 같은 날 아버지의 동상과 아들의 위패 앞에 섰다. 통신사의 길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죽음도 있었다.
학생들은 또한 도시샤대학의 윤동주·정지용 시비를 찾고, 교토민단 관계자와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다. 재일동포 동화작가 김황에게서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통신사의 시대는 저물었으나 두 나라를 잇는 발걸음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이동 경로를 정하고 교통비와 식비도 직접 계산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고 사람을 만났다. 역사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를 빼앗아 간 나라를 평생 오간 이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나라 혹은 친구 사이의 관계가 어긋났을 때 이를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정해진 답은 없다.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도 어쩌면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갈 힘을 기르는 데 있지 않을까.
조선 국왕이 일본 쇼군에게 보냈던 외교사절, 통신사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새롭게 요청된다. 양국이 서로의 사정을 살피고 뜻을 전하며 관계를 이어 가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이 과거의 잘못을 덮는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를 알고 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서부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예의 길에 선 학생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삶과 죽음을 대면하고, 오늘날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경험은 훗날 그들이 진로를 탐색하고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 생각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전교생 22명의 작은 학교가 참으로 큰 여행을 했다. 이예의 길을 따라간 학생들이 이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이 오늘의 통신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