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반구대 야별행:달 아래, 반구대’의 특별했던 밤
2026 세계유산축전 기획행사 “반구대 야별행:달 아래, 반구대”는 빛과 소리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숨결을 오롯이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9월 8일부터 19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 이 행사는 우리나라 선사 문화를 대표하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를 현대적인 미디어아트 기법과 접목해 선보인 야행(夜行) 축제였다.
가을밤, 달빛을 배경으로 반구천 일대를 거닐며 감상하는 미디어아트는 단순히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는 시공간을 선사했다. 바위 위에 새겨진 수천 년 전의 고래와 수많은 동물 그림이 빛을 입고 생동감 있게 형형색색으로 되살아나 움직이는 모습은 현장에 있던 관람객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문화유산의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이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고품격 문화 콘텐츠로 그 순간만큼은 7천 년 전의 시간이 현재로 이어짐을 느끼며 문화유산도 시대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인공적인 무대가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그 장소에서 밤의 반구대를 마주했다는 사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 야별행은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밤길을 거닐며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는 코스로 꾸려졌는데 문화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문화관광해설사의 깊이 있는 해설이 단연 돋보였다. 평소 나 역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기에, 한 명의 관람객 입장으로 돌아가 다른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시간이 더욱 특별하고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오디오 가이드, 스마트 키오스크 등 첨단 안내 시스템이 상용화되어 있어 언제든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박물관 현장에서 관람객들과 눈을 맞추고, 생생한 음성으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역할은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크게 느끼게 했다.
해설사의 입을 통해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 담긴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과 바위그림의 의미가 하나둘 풀어질 때, 함께 들었던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어려운 역사적 사실도 해설사의 정성 어린 스토리텔링을 거치니 눈앞에 그림처럼 그려졌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현장에서 관람객들이 “해설을 들으니 암각화가 훨씬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냥 지나칠 뻔한 그림 속에 이런 뜻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같은 해설사로서 깊은 공감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기계가 전해주는 일방적인 정보와 달리,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여 서로 교감하고 반응하며 만들어 내는 온기 어린 설명이야말로 문화유산에 진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최고의 매개체였다. 박물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으로 차곡차곡 쌓은 사전 지식과 감흥은 곧이어 펼쳐진 미디어아트 야행 현장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관람의 깊이를 한 층 더 끌어올려 주었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했던 기획과 뜨거운 성원 속에서 많이 아쉬웠던 점은 바로 짧은 ‘운영 기간’이었다. 약 2주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만 진행되다 보니,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방문을 희망했던 많은 분들이 참여 기회를 놓치고 발을 굴러야 했다. 행사 종료 후에도 지역 커뮤니티와 주변에서는 “소문 듣고 가려니 이미 끝났다고 해서 너무 아쉽다”, “다음 일정은 언제 또 열리느냐”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역사적 가치와 대중성, 그리고 사람 간의 감성적 교감까지 함께 한 모범적인 문화 프로그램이 단 2주간만의 행사로 끝나는 것은 지역 문화 자원의 활용 면에서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 사람의 참가자이자 현장의 가치를 잘 아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시각에서, 시민들의 아쉬움을 해소하고 행사의 독창성을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반구대 야별행’이 매년 정례화되었으면 좋겠다. 특정 시기를 지정해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면, 울산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야간의 문화관광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행사 운영 기간도 좀 더 늘리면 어떨까한다.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노고에 비해 2주는 너무나 짧은 것이 아닌가 한다. 운영 기간을 최소 3~4주 이상으로 늘린다면, 더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찾아와 해설사의 따뜻한 설명을 듣고 미디어아트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바위에 새겨져 있던 반구대 암각화가 현대적인 미디어아트라는 옷을 입고, 해설사의 목소리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함께했기에 더욱 빛났던 이번 ‘반구대 야별행’이 단 한번의 추억으로 사라지지 않고, 매년 가을 달 아래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울산의 대표 문화 축제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박애경 울산문화관광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