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 대체 역사소설 '대원군의 승부수'

경복궁 재건 위해 발행 ‘당백전’ 대신 ‘인본전’ 발행했다는 ‘허구’로 비틀면 진실 왜곡이라 목소리 높일 세태 씁쓸 ‘대체 역사소설’ 메시지 읽을 수 있어야

2026-10-18     조재원 UNIST 교수
조재원 UNIST 교수

  '권력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생긴다.' 그렇게 흥선은 속으로 되뇌었다. 조정이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백성이 모이는 그곳에 화폐가 생기도록 유도만 하면 되는 것이라 마음먹었다.

 "오늘부로 '인본전(人本錢)' 화폐를 시행한다."

 흥선은 아들이 즉위한 후 지금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다. 흥선의 이 말에 놀란 것은 호조판서와 좌의정이었다. 며칠 전 흥선에게 '인본전(人本錢)'이 아니라 '당백전(當百錢)'이라고 귀띔받았는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화폐일 것이라 호판과 좌의정은 생각했다. 이들은 당백전 발행에 앞서 화폐 재료인 동을 대량 확보해 뒀고, 화폐를 찍어낼 청계천 일대 상인들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당백전이 무엇인가? 일당백을 보장해 주는 화폐 아닌가. 당백전 1닢이면 상평통보 100푼 가치였다. 큰돈을 만질 절호의 기회였다. 경복궁을 재건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흥선은 새로운 화폐의 이름을 일당백의 화폐, 당백전이 아니라 가치 기준이 백성에게 있다는 인본전이라 말하고 있다.

 호판과 좌의정과 만나 경복궁 재건을 위한 국고 마련을 위해 당백전을 논의한 이후 며칠간 흥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흥선은 당백전이 아닌 인본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당백전이 시행되면 생길 시장 가격 상승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흥선에게 다른 방도가 생겼음이 분명했다. 왕권 강화란 명분이 아무리 중요해도 생필품 가격 상승이 백성에게 어떤 어려움을 가져올지 불을 보듯 뻔한데 무리하게 당백전을 조정이 강제로 발행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흥선은 생각했다. 흥선의 복안은 당백전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랐다.

 흥선의 아이디어는 방방곡곡에 써 붙인 방에 뚜렷이 드러났다.

 '왕실은 국가의 권위지만 백성 없는 왕실은 있을 수 없다. 백성은 생업을 제쳐두고 경복궁 재건에 힘을 쏟지 마라. 대신 생업을 챙긴 후 여력이 생길 때, 또는 집안을 챙기고도 여력이 있을 때 왕실을 위해 힘을 보태는 자에게 조정은 ‘인본전’ 징표를 각자의 호패에 찍어줄 것이다. 모인 백성의 수만큼 인본전 징표의 가치는 매겨질 것이다. 인본전이 전국 시장에서 반드시 통용돼야 한다고 조정은 강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본전이 조선 팔도 시장에서 통용되고 가게에서 받아주는 것은 왕실을 살리는 길이고 백성 스스로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왕도라고 인정하는 바이다.'

 '인본전' 방이 전국에 나붙었을 때 백성은 의아해했다. 무슨 말인지 살피기 어려웠고 경복궁 공사에 참여해 인본전 을 받으면 그 돈을 쓸 수 있는 곳이 생길지 의심했다. 처음 몇 달간 경복궁 공사장을 찾는 백성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이제 목수 일을 그만둔 노인들이 경복궁 공사장에 맨 처음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 든 목수에게 일 배우겠다고 새파란 젊은이가 따랐다. 이들은 설사 인본전을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기적이 생겨났다. 노인들의 호패에 찍힌 인본전을 사대문 종로 운종가 시장의 국밥집에서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생긴 후 얼마 후 경복궁 공사장으로 몰려든 백성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그렇게 흥선대원군의 당백전은 역사책에서 사라졌다.

 누군가는 이 엄연한 진실을 역사 왜곡이라 불렀다. 대체 역사소설이라고도 했다.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 당백전과 함께 역사를 바꿔버린 조선은 민중의 힘으로, 일제로부터 자신을 지켜냈다.  조재원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