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일기] 심부름 하는 아이, 자라는 마음
얼마 전 강남 학군지에서 십여 년간 학생들을 지도해 온 한 초등 교사의 교육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가정에서의 기본생활습관 교육을 강조하는 내용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경한 대목이 있었다. 1학년 아이들에게 작은 심부름 하나를 시켜도 “아, 왜 나한테 시켜요?”라며 귀찮아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1학년 교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 심부름을 ‘서로 하고 싶어서’ 안달이기 때문이다.
입학 초기에는 아이들이 학교 구조를 잘 모르니 심부름을 시킬 수가 없어서 교사가 직접 유인물을 들고 교실을 나서게 된다. 그러면 금세 “선생님 어디 가요? 나도 갈래요!” 하며 졸졸 따라오는 아이가 기본 서너 명이다. 어떨 때는 예닐곱 명이 뒤를 따르니 꼭 어미 닭과 병아리 같은 모습이 되는데 이걸 보고 옆 반 선생님께서 ‘백설공주와 난쟁이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시기도 했다.
점차 아이들이 학교 구조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아이들끼리 심부름을 보낼 기회가 늘어난다. 옆 반에 안내장을 전할 때면 쉬는 시간에 무리에 끼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아이를 찾아 “이것 좀 옆 반 선생님께 전해줄래?” 하며 미션을 건넨다. 안내장을 받아 든 아이가 기쁘고도 긴장된 표정으로 교실을 나서면 어느새 눈치챈 주변 아이들이 “저도 같이 갈래요!” 하고 조르기 일쑤다. 그러면 같이 다녀 오도록 해주는데 처음 심부름을 받은 친구의 안내장을 빼앗아 들려는 아이도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도록 중재도 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런 작은 심부름을 통해 학교를 탐험하고 자아효능감과 책임감, 친구 사이의 유대감을 키운다.
분리배출을 하러 갈 때 교사가 “같이 갈 사람?” 하고 외치면 네댓 명이 달려와 서로 분리배출 상자를 들겠다고 다투곤 한다. 함께 분리수거장을 찾아가고 종류별로 분리배출한 뒤 빈 상자를 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소풍이라도 다녀오는 듯 즐겁다.
학교로 배송된 택배를 가져올 때도 선생님 손에 든 물건을 나눠 들어주려는 아이들이 많다. 무겁지 않냐고 물어보면 그 말에 더 슈퍼 파워가 솟아나는지 “하나도 안 무거운데요!” 하며 짐을 추스르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가끔 심부름 간 아이 손에 젤리 같은 것을 쥐여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신데 그러면 그 아이는 날 듯이 교실로 돌아와 자랑을 하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선생님의 심부름을 귀찮게 여기게 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작은 간식을 챙겨주시는 동료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문득 심부름을 귀찮아한다던 그 학군지의 아이가 젤리를 받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집에서도 자주 먹는 거라며 사양했을까, 아니면 불량식품을 줬다고 민원 전화가 걸려 왔을까.
그 아이들은 왜 자발적인 의욕을 잃어버렸을까. 어릴 때부터 빽빽한 학원 스케줄과 “너는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 아빠가 다 해줄게”라는 과보호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은 아닐까.
돌아보면 나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심부름은 늘 반장이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5학년 때 처음으로 선생님이 나를 지목해 옆 반에 심부름을 보내셨을 때의 그 설렘과 우쭐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 중인 옆 반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서며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 두 손으로 물건을 건네고는 뒤돌아서지도 못한 채 뒷걸음질로 교실을 나왔던 쑥스러움은 내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아이들의 심부름을 향한 열정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아효능감, 타인과의 관계 욕구, 그리고 담임교사를 향한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부려먹기 위함이 아니다. 심부름이라는 작고 소박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고, 교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간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대신해 주지 말자.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소소한 역할과 심부름을 기꺼이 맡겨보자. 작은 도움 끝에 건네는 “고맙다”는 한마디, 그리고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이 오늘도 아이들을 단단하게 키워내고 있다.
김은진 개운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