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

2026-10-22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

 

“고복수가요제로 주차난이 예상되오니….”

안내문 앞에서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고복수가 누구야? 연예인이야?”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젊은 세대인가 싶어 슬쩍 쳐다봤는데 아니었다. 울산에서 30년 넘게 살았고, 심지어 병영에서 오래 살았다고 말하는 중년이었다.

‘고복수를 모른다고?’

속으로 ‘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타향살이’로 이름을 알렸고, 울산 중구 병영에서 태어난 울산 대중가요사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딴 가요제가 열릴 만큼 지역에서는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안다’고 해서 남도 당연히 알아야 할까.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유럽의 유명 도시와 미술관은 줄줄 꿰면서 정작 집 가까이에 있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람도 만났다. 해외 여행지 맛집은 기가 막히게 찾아가면서 우리 동네에 어떤 문화유산이 있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고복수는 낯선 이름일 테고,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유명 가수의 이름 역시 그저 ‘누군가’일 뿐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는 생각보다 제멋대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이 기자였고 지금도 홍보하는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지역 소식은 남보다 빨리 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업이 생기고, 행사가 열리고, 재미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귀가 먼저 열린다. 정보를 찾고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는 일이 오랜 습관이 됐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세상 또한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에게는 상식인 것을 나는 까맣게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그것도 몰라?”라고 쉽게 말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모르는 것’보다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필요한 정보만 골라 보는 시대다. 휴대전화는 내가 좋아하는 뉴스, 즐겨 보는 영상, 관심 있는 사람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가져다준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관심의 반경은 좁아질 수 있다.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세상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내 취향 밖의 사람과 동네, 공동체의 이야기는 점점 희미해진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람 사이의 거리에도 익숙해졌다.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은 분명 좋은 변화다. 하지만 배려와 무관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남의 일인데 뭐’라는 말이 편해질수록 이웃의 사정도, 동네의 역사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이야기도 조금씩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홍보를 업으로 삼는 나에게는 더 난감한 문제다.

기사를 쓰고 보도자료를 내고, 카드뉴스를 만들고, SNS에 목청껏 외친다고 해서 모두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관심의 문이 닫혀 있으면 그 앞에서 멈춘다. 열심히 알렸는데 “그런 게 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맥이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그 말은 홍보하는 사람에게 가장 정확한 숙제다.

‘몰랐다’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심 없는 사람까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것, 어려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 지역의 오래된 가치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소개하는 것. 그것이 홍보하는 사람의 몫 아닐까.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맞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맞다.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살 필요는 없다. 때로는 모르는 편이 마음 편한 일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사는 곳의 사람과 역사, 이웃의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고복수를 몰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그 이름 하나를 알게 되면서 내가 사는 병영의 골목이 조금 다르게 보이고, ‘타향살이’ 한 소절에서 한 시대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도 제법 괜찮은 앎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알리고 싶다.

아는 게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사는 동네가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어질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알겠다.

전미향 창업일자리연구원 홍보팀장·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