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추미애의 입과 정치인의 책임
정치판 재현된 국정감사 현장 논란의 정점 찍은 추미애 발언 정치인 말의 무게 되새겨야 할 때
국정감사가 지난주 국토부를 끝으로 마무리 됐다. 울산에서는 울산시청과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관심을 끌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국회의원들의 고성과 단체 퇴장 등 파행을 겪으며 막을 내렸다. 국가 정책이 일선 행정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국정감사 현장이 정치판을 답습하는 상황은 아쉬움이 남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현장은 경기도였다. 감사기간에 불이 나고 불을 지른 아수라장이 이어졌다. 문제는 불을 끄는 사람에게 행정의 책임자가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쉽게 꺼질 줄 알았던 모양이었지만 '억지사과'가 기름을 부었다.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나온 추미애 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이야기다. 입은 작지만 그 입이 낸 불길은 크다. 소방관이 현장의 불을 끄는 동안 정치인은 자신의 말에 붙은 불조차 끄지 못했다. 국민은 또 한 번 정치인의 혀가 얼마나 가볍고, 권력의 껍질은 얼마나 두꺼운지 지켜봤다.
말에는 주인의 생각이 묻어난다. 평소 닦아놓은 인식이 단어를 고른다. 추 지사는 소방 예산을 설명하며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했다.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재정을 지방이 상당 부분 부담하는 모순은 따져야 한다. 국비 지원을 늘리라는 요구도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 구조를 고쳐달라는 말과 소방을 빨대에 빗대는 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도지사가 향해야 할 곳은 정부의 예산 편성표다. 소방관의 자존심이 아니다.
빨대는 남의 것을 손쉽게 빨아들이는 이미지를 품는다. 그래서 더 아프다. 뜨거운 연기를 들이마시며 사람을 구하는 조직을 재정을 빨아들이는 존재에 빗댔다. 예산서에는 인건비가 숫자로 적힌다. 현장에는 그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이 있다. 도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장부의 지출과 시민의 안전을 함께 읽어야 한다. 소방에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이 그 돈을 골치 아픈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안전을 지키는 비용이 아깝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행정의 우선순위까지 의심받는다.
사과는 더 기막혔다. 추 지사는 순직 소방관 빈소를 조문한 뒤 "사과를 바라시니까"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과의 주어가 뒤집혔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원해서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 말이 또다른 사과를 불렀다. 국감에 이어 소방노조 관계자들에게도 직접 사과했다. 하지만 반복된 사과의 횟수가 첫 사과에 묻어난 책임 회피까지 지워주지는 않는다.
자기편을 감싸는 말도 불길을 키웠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소방이 국가직인데 지방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취지를 설명하면서 재정을 "쭉쭉 빨아먹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잘못된 비유를 해명하겠다며 같은 비유에 펌프를 달았다. 당은 부 의원에게 엄중 경고와 윤리심판원 조사를 지시했다. 그렇다면 추 지사에게 적용할 기준도 분명해야 한다. 같은 말의 무게가 초선 의원 앞에서는 무겁고 유력 도지사 앞에서는 가벼워진다면, 당의 기강은 원칙보다 체급을 따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가 내편에 관대한 것은 낯설지 않다. 서영교 법사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옷을 벗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두둔하며 일을 잘한다는 점을 내세웠고, 야당 반대 속에 청문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후보자는 추가 의혹이 불거진 뒤 사퇴했다. 청문회는 동료의 장점을 칭찬하는 자리가 아니다. 공직을 맡겨도 되는지 묻는 자리다. 검증대에 올라온 사람에게 보증부터 서면, 질문은 방해물이 되고 의혹은 적의 공격이 된다.
지난해 최민희의 양자역학 해명은 또 어떤가. 국감 기간 딸 결혼식에 피감기관 화환이 늘어서고 모바일 청첩장의 카드 결제 기능까지 논란이 됐다. 당시 과방위원장이었던 그는 양자역학 공부로 바빠 결혼식을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국민이 물은 것은 과학 공부의 성실성이 아니었다. 감사하는 권력과 감사받는 기관 사이의 거리였다. 그 질문 앞에 양자역학을 꺼냈다. 우주의 미세한 입자를 공부하느라 자기 자리의 큰 권한을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변명으로 늘어놓은 게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강선우의 보좌진 갑질 의혹 해명도 같은 질문을 남겼다. 지난해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보좌진에게 사과하면서도 세부 의혹에는 오해라는 취지로 답했다. 개별 의혹은 확인된 범위에서 판단해야 한다. 다만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공인의 약속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자리에서도 시험받는다. 사과를 했다면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고치겠다는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상처는 인정하면서 그 상처를 낸 행동은 흐릿하게 만드는 사과로는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이번주부터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논의를 공식화 할 태세다. 위기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한 카드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당내에서도 그런 방식에 거리를 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기편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보다 상대를 겨누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국민은 국면전환이라는 계산부터 떠올린다. 책임을 묻는 질문에 더 큰 싸움으로 답하는 정치에 이미 지쳤기 때문이다.
탄핵을 말하려면 정치적 불쾌감을 넘어서는 확실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서영교 위원장이 제시한 위헌·위법 의혹 역시 제기 자체로 사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혹을 나열하는 목소리의 크기가 입증을 대신할 수 없다. 여론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국민의 신뢰가 지도부의 구호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입을 단속하지 못하는 정당이 남의 자리를 비우라는 말부터 하면 설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추미애 경기지사의 말에서는 오래된 장면이 겹친다. 그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줄이고 줄여도 책자로 만들 정도"라고 했다. 정치인이 자기 확신을 국민의 판단보다 앞세울 때 어떤 역풍을 맞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말을 많이 해온 정치인일수록 자신의 과거 발언 앞에서 먼저 겸손해야 한다. 지금 추미애의 입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그 입을 식혀줄 물은 소방관에게 구할 일이 아니다. 자기 말에 대한 책임부터 살피는 반면교사를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