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업이 바다 살리고 정부가 탄소 검증…새 환경복원 모델 구축
[울산형 블루카본 구축, 블루이코노미 중심도시로 도약하라] ①스페인 안달루시아주의 실험 기업 5곳 참여 카디스만 조석습지 155㏊ 복원 50년간 이산화탄소 3만2000t 이상 흡수 추산 과학적 산정 기준·행정 지원·장기 검증 결합 환경복원 넘어 지속 가능한 사업화도 모색 “지역별 자연환경·생태적 특성 먼저 조사해야”
2026-10-28 김상아 기자
지난 9월 스페인 안달루시아주 세비야에서 만난 인마쿨라다 톨라 페레스(Inmaculada Tola Pérez) 안달루시아주 기후변화사무소장은 블루카본 정책을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풍부한 연안 생태계와 기업에 대한 행정·법적 지원, 탄소흡수량을 과학적으로 산정하는 기술력이다.
안달루시아주의 대표적인 블루카본 시범사업은 ‘카디스만 복원 프로젝트(Proyecto de restauración de la Bahía de Cádiz)’다. 전체 사업 대상지는 과달레테강 북쪽 155㏊와 라스알레타스 210㏊ 등 총 365㏊로, 이 가운데 민간기업 5곳이 참여하는 과달레테강 북쪽 조석습지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과달레테강 북쪽 사업 대상지는 과거 염전과 양식장 등의 이용으로 자연스러운 물 흐름이 훼손된 곳이다. 주정부는 수로와 지형을 정비해 밀물과 썰물에 따른 해수의 흐름을 회복하고 있다.
수리·조석 환경을 개선해 살리코르니아(Salicornia) 등 염생식물이 다시 정착하도록 하고, 식물과 습지 토양의 탄소흡수·저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주정부가 제시한 사업계획에 따르면 복원된 습지는 향후 50년간 3만2,000t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것으로 추산된다.
호텔·관광, 조선, 에너지, 도시철도, 서비스업 등 서로 다른 업종의 기업 5곳이 탄소중립과 환경복원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하나의 사업에 참여했다.
주정부는 이들 기업을 연결해 공동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기업들은 복원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하고, 향후 사업을 통해 확보한 탄소흡수 성과를 자발적 배출 상쇄에 활용하는 구조다.
톨라 페레스 소장은 현지 면담에서 기업들이 복원사업의 비용을 부담하고 관리에도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민간자본을 공공의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유도하는 것이 주정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주정부가 제시한 과달레테 사업의 예상 탄소흡수 비용은 이산화탄소 1t당 약 15유로다. 다른 자발적 탄소상쇄사업의 비교 비용인 70~100유로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만 톨라 페레스 소장은 국가별 법률과 경제적 여건, 복원 대상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수치 역시 실제 탄소크레딧 거래가격이 아닌 사업 측이 추산한 탄소흡수 비용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4년 11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공식 구상이 발표된 뒤 구체화됐다. 지난해 11월 참여기업들과의 공식 협약을 거쳐 복원공사에 착수했다.
안달루시아의 블루카본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복원기술뿐만 아니라 탄소흡수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췄다는 점이다.
안달루시아주는 유럽연합의 LIFE Blue Natura 프로젝트를 토대로 ‘안달루시아 블루카본 표준(Estándar Andaluz de Carbono Azul)’과 탄소흡수량 계산 도구를 마련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스페인 국가과학연구위원회(CSIC) 등 연구기관이 참여해 조석습지와 해양 현화식물 군락지의 탄소흡수량을 산정하는 방법론을 구축한 것이다. 관련 기준과 계산 도구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복원사업이 곧바로 탄소상쇄 실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일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지를 선정하고, 복원사업이 없었을 경우와 비교해 실제로 얼마나 많은 탄소가 추가로 흡수되는지 평가해야 한다.
또 다른 조건은 장기적인 유지·관리다.
톨라 페레스 소장은 “50년 동안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이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기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업 참여자가 복원과 관리에 나서더라도 주정부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사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맡는다.
과달레테 프로젝트에는 카디스대학교 연구진도 참여하고 있다. 복원 전후의 생태적 변화를 평가하고 탄소흡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톨라 페레스 소장은 기업들이 환경보호 활동을 홍보하거나 행정기관과 협약을 체결하는 것만으로는 시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과학적 연구와 객관적인 검증이 뒷받침돼야 기업의 환경투자도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달루시아주 정부가 기업 참여를 연결하는 동시에 연구기관의 산정 기준을 활용하고, 사업의 장기적인 이행 여부를 검증하는 이유다.
다만 안달루시아의 사업은 아직 성과를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현지 취재 당시 톨라 페레스 소장은 관련 제도를 통해 탄소크레딧을 실제 발행받은 기업은 없다고 밝혔다. 과달레테 사업의 3만2,000t 역시 50년간의 예상 누적 흡수량으로, 실제 인증된 실적과는 구분된다.
안달루시아주는 과달레테강 조석습지 외에도 해저의 포시도니아(Posidonia oceanica) 군락지를 대상으로 블루카본 복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카보데가타-니하르 자연공원 복원 프로젝트(Proyecto de restauración en el Parque Natural Cabo de Gata-Níjar)’는 선박 정박시설로 훼손된 포시도니아 군락지의 보전과 복원을 목적으로 마련된 별도의 시범사업 계획이다.
약 11㏊의 해저를 대상으로 기존 콘크리트 정박시설을 제거하고, 해양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계류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훼손된 군락지에 식물체나 종자를 이식하는 복원 활동도 검토한다.
현지 관계자는 포시도니아 군락지 복원에는 잠수인력과 해저 작업 등이 필요해 조석습지와는 기술적·경제적 여건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안달루시아주는 이처럼 지역별 생태적 특성에 적합한 복원 방식을 마련하고, 이를 탄소흡수 성과와 연결하는 사업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탄소흡수 외에 생물다양성 증진과 수질 개선, 연안 생태계 회복 등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사례는 지방정부가 기업 참여를 연결하고, 연구기관이 과학적 기준을 마련하며, 민간기업이 복원 비용을 부담하는 새로운 환경복원 모델을 보여준다.
톨라 페레스 소장은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의 적용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충분히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