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천문학적 공사비·소송전 딛고…도심의 발로 자리매김
[궤도 없는 트램, 울산 대중교통의 미래] ② 보행자 중심 거리로 바뀐 시드니 지하 매설물·사업 관리 문제로 공사비 폭등 장기간 도로 통제에 상인들 집단 손배소까지 주정부, 소상공인 지원·보행공간 확대 추진 트램·보행자 거리 위해 차도 폐쇄 ‘정면 돌파’ 울산, 사전 매설물 조사·상권 보호대책 마련을
2026-10-29 강은정 기자
본지 취재진이 찾은 호주 시드니 역시 10년전 똑같은 홍역을 치렀다. 사업비는 당초 예산 16억 호주달러에서 30억 호주달러로 폭증했고, 도로 마비에 분노한 상인 300여곳의 4,000억원대 집단 소송까지 터졌다.
하지만 시드니는 이 진통을 딛고 세계적인 보행자 중심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드니가 치른 뼈아픈 상황과 이를 극복해낸 상권 활성화 지원책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지하 미확인 매설물 발목…두 배 가까이 뛴 공사비
지난 15일 만난 시드니 도심 조지 스트리트에서 15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안젤라(Angela, 52)씨는 2017년 공사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가게 앞을 트램이 조용히 지나가고 야외 테이블마다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2015년 시작된 시드니 라이트레일 건설 공사는 시드니시 전체를 삼켜버린 도심 마비의 시작이었다고 떠올렸다.
안젤라 씨는 “그때는 매일 아침 길을 나서는게 공포였다. 상가 바로 앞 1m 거리에 높이 2m의 공사 펜스가 쳐지면서 손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도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 감옥 같았다”라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도심은 활기가 넘치고 보행자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시드니 라이트 레일 L2, L3 사업은 당초 16억 호주달러(약 1조 4,500억원) 예산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2015년 10월 첫 삽을 뜨자마자 치명적인 악재가 터졌다. 100년이 넘은 고도 시드니 지하에는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은 전선, 가스관, 수도관이 가로세로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것이다.
매설물 이설 작업이 지연되면서 공기는 당초 계획보다 2년 이상 늘어났다. 민관협력사업 컨소시엄인 알트랙(ALTRAC)의 주도 시공사 악시오나는 “정부가 지하 매설물 위험성을 속였다”며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주정부는 2019년 시공사 측에 5억7,600만 호주달러(약 5,200억원)를 추가 지급하기로 합의해야했고, 총사업비는 당초 예산의 두배에 가까운 30억 호주달러(약 2조7,000억원)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더 큰 문제는 길거리 상인들이 입은 타격이었다. 조지 스트리트 축을 따라 수년간 가림막이 쳐지면서 보행자 동선이 잘려 나갔고, 매출이 70% 이상 폭락한 상점들이 줄폐업했다.
급기야 분노한 소상공인 300여 곳이 뜻을 모아 주정부의 공사 관리 부실과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4억 호주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정부의 공사 지연과 난개발이 상인들에게 불합리한 재산상, 정신적 피해를 안겼다”라며 소상공인들의 손을 들어줬고, 주정부는 배상금을 지급하는 대가를 치르는데 이르렀다.
#공사 구역 전체 활성화 위해 행정력 총동원
소송전과 민원 폭주라는 벼랑 끝에서 NSW주정부와 시드니시를 구한 것은 과감한 소상공인 구제와 상권 활성화 프로그램이었다.
단순한 푼돈 보상을 넘어 공사 구역 전체를 살아있는 거리로 유지하기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했다.
시드니시는 소상공인 긴급 자금 지원책으로 공사가 당초 공사기간보다 지연되는 구역의 50인 미만 소상공인에게 임대료와 공과금을 직접 보존해주는 펀드를 가동했다.
또 20여명의 현장 전담 조율관을 배치해 1:1 매칭으로 상인들의 물류 배송 구역을 확보하고, 공사 소음과 먼지 민원을 일일이 조율했다.
2m 가량의 공사구역 펜스를 그래피티와 미디어 아트로 꾸미고 공사가 일시 중단되는 주말과 연말 시즌에는 현장을 개방해 팝업 마켓, 크리스마스 인 조지 스트리트, 라이브 버스킹 공연을 끊임없이 개최했다.
5만부 이상의 지역 상권 쿠폰북 발행과 SNS 마케팅 펀드를 주정부가 직접 집행해 손님 발길을 끌어 모았다.
무엇보다 라이트 레일 완공 직후 주정부가 던진 최종 승부수는 도심 차도 전면 폐지였다.
라이트 레일 개통과 동시에 조지 스트리트 2.6㎞ 구간에서 승용차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아스팔트를 전부 걷어내 9,000㎡ 넘는 대형 보행자 전용 광장으로 완전 전환했다.
차량이 뿜어내던 매연이 사라지자 야외 카페와 고급 레스토랑 테라스가 도로 위로 쏟아져나왔다.
도로를 되찾은 시민들과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현재 조지 스트리트의 하루 유동인구는 공사 이전 수준을 훨씬 뛰어넘으며 완벽한 대반전을 이뤄냈다.
시드니의 사례는 삼산로와 문수로라는 가장 무거운 도심 혈관을 파헤쳐 트램 1호선을 깔고자 하는 울산시에 가장 명확한 경고이자 정책 가이드라인을 던진다.
굴착 방식의 철로 공사는 아무리 사전에 정밀 기획을 하더라도 예산 초과와 도로 마비, 소상공인 피해라는 진통을 반드시 요구한다는 점이다.
#울산형 상권 직접 지원 조례, 전담 현장 중재관 제도 도입 필요성 높아
울산시가 시드니의 실패와 성공에서 배워야 할 핵심은 공사가 시작되기 전 매설물에 대한 완벽한 사전탐사와 공사 지연시 소상공인 영업 손실을 담보할 울산형 상권 직접 지원 조례와 전담 현장 중재관 제도를 선제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철길을 깔고 차도를 줄이는 토목 공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종합 도심 재생 비전이 병행돼야만 시민과 상인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NSW 교통부 관계자는 “공사는 어떤 도시든 도로 마비와 소상공인 피해라는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공사 진통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도심은 계속 승용차와 매연에 갇히게 된다. 울산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도시의 주인을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과감한 결단과 상인과 시민을 보호할 치밀한 안전망이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