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매일통신] 전쟁은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안일한 대북자세 오판 초래 가능성 철저한 대비태세가 안보의 최우선 반복된 위협에 경계심 늦추면 안돼
새벽 3시. 대한의 새벽은 아직 여명이 시작되지 않았다. 도로에는 새벽 배송 차량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서해 연평도 최전방 감시초소에서 폭발음이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검은 물체 하나가 초소를 덮쳤고, 뒤이어 인근 군사시설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처음에는 무인기 침투로 여겼다. 그러나 백령도 인근 서해 5도 전방 곳곳에서 비슷한 보고가 쏟아졌다. 잠시 뒤 대구경 방사포탄이 날아들었다. 잠든 나라를 깨운 것은 알람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새벽 3시 12분. 군 지휘통제실의 상황판에 붉은 표시가 번졌다. 감시시설 일부가 기능을 잃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전화벨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간 청와대에 핫라인이 가동됐다. 북의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명의의 포고문이 전달됐다. <금일 07시까지 서해 5도에 대한 영토포기 성명을 발표할 것. 조치가 없을 경우 핵탄두 1발을 서울 접경에 발사한다.> 딱 2문장이었다. 안보실에서 대통령에게 긴급 보고가 전달되고 한미 군 당국은 대응에 나섰다. 긴급 NSC가 열렸고 한미간 핫라인이 가동 됐지만 강경대응과 지연전략 등 대응방법을 놓고 혼란이 가중됐다.
새벽 5시 30분. 전국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휴대전화가 동시에 진동했고 아파트마다 불이 켜졌다. 아이를 깨우는 부모, 노모에게 전화를 거는 아들, 차를 몰고 도로로 나서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사실보다 빨리 퍼졌다. 울산의 자동차·조선·석유화학 공장에서도 근로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전화가 이어졌다.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염포산 미사일 기지의 포문이 열린 시간도 그 때였다. 평범한 금요일 새벽이 순식간에 낯선 공포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는 가상이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그 시각과 피해도 모두 허구다. 그러나 이 장면에 등장한 무기의 종류와 공격을 연상시키는 훈련은 최근 잇달아 우리 휴전선 접경지대에서 공개됐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무인기와 주요 무기체계의 실사격 훈련을 선보였다. 한국군 최전방 감시초소와 닮은 구조물을 자폭 무인기로 타격하는 장면도 공개했다. 가상의 첫 장면과 현실의 훈련 영상 사이에 섬뜩한 접점이 생겼다.
북한이 공개한 훈련에는 전술 자폭 무인공격기와 다목적 무인기, 전술 순항미사일, 600㎜ 대구경 방사포가 등장했다. 북한은 방사포에 ‘저격수’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남측의 대포병 레이더로 추정되는 모형도 공격 대상이었다. 우리 최전방 초소를 연상하는 목표지점으로 만들어 포탄을 퍼붓는 장면도 연출됐다. 일련의 행동에서 북한이 어떤 목표물을 상정하고 어떤 무기를 결합해 보여주려 하는지는 충분히 읽힌다. 특히 감시초소와 레이더를 닮은 표적의 등장은 무기 전시를 넘어 상대의 군사시설을 상정한 시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TV에 나온 평론가들은 이것을 곧바로 공격 계획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눈알을 굴리지만 내일 새벽이라도 자신의 집 앞에 포탄이 날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는다.
최근 북에서 진행하는 위협의 모습은 달라지고 있다. 핵탄두와 탄도미사일만 바라봐서는 전체를 볼 수 없다. 무인기는 정찰과 공격을 함께 수행하고, 장거리 화력은 짧은 시간에 여러 표적을 위협할 수 있다. 북한은 국방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까지 강조했다. 전쟁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고 여겼던 작은 충돌이 다른 공격과 겹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단 한 번의 오판이 더 큰 충돌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훈련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김정은은 연습 현장에서 “힘이 곧 평화이고 평화는 힘으로만 담보된다”고 말했다. 평화를 말하는 자리에서 상대의 군사시설을 닮은 표적을 파괴하는 장면을 공개한 셈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무력 증강을 방어적 조치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억제력을 강조한다. 양측의 군사행동이 서로에게 새로운 경계심을 불러오는 구조다. 그렇기에 힘을 갖추는 일과 충돌을 관리하는 일은 동시에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에 있다.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는 북의 포문이 열려도 빙그레 웃을 뿐이다. 지뢰가 터져도 미사일을 쏘아도 그저 기다리고 포용해야 한다고 사오정 답변을 궁리 중이다. 여기에 국방장관은 “전쟁이 나면 미군은 믿을 수 있나”라는 엉뚱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쯤 되면 북의 위협에 우리의 준비는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인기 침투를 조기에 탐지하고 민간 피해를 줄일 방어체계는 촘촘한가. 군 지휘통제망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해도 작동하는가. 한미 간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은 실전에서 지체 없이 이어질 수 있는가. 구호만으로 자주국방을 완성할 수 없고, 동맹이라는 이름만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일상화된 익숙함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잠시 속보가 됐다가 사라진다. 위협을 매일 듣다 보면 경고도 일상의 소음이 된다. 물론 안보를 공포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북한의 훈련 공개가 곧 공격 임박의 증거라는 말도 아니다. 과장도 방심도 모두 위험하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할 수 있는 정보다. 경보를 받으면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가족과는 어떻게 연락할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어떻게 가려낼지 평소에 익혀야 한다.
새벽 3시는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충전의 꿀잠을 자는 시간이다. 전쟁이 앗아가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아이의 등굣길, 가족의 식탁, 아무 일 없이 맞는 아침이다. 울산의 산업현장도 서울의 골목도 그 평범함 위에 서 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그 일상이다.
가상의 전쟁은 새벽 3시에 시작됐다.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그 시간은 언제나 평범한 새벽으로 남아야 한다. 북한의 실사격 장면은 경계할 이유이지 전쟁을 기정사실로 만들 이유는 아니다. 필요한 것은 빈틈없는 대비와 냉정한 판단, 그리고 우발적 충돌을 막을 소통이다.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막기 위한 준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쌓인다. 새벽 3시. 그 시간이 전쟁의 첫 시각으로 기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