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의 기틀은 군사주권과 외교권에 있다

전작권 전환, 안보와 주권 함께 봐야 한미동맹 토대 한국군 주도능력 키워 자주국방 향한 전환 준비 서둘러야

2026-11-02     박해양 지산주택㈜·백상산업개발㈜ 대표이사, 대한무술경호연합회 총재
박해양 지산주택㈜·백상산업개발㈜ 대표이사, 대한무술경호연합회 총재
국가의 기틀은 군사주권과 외교권에 체현(體現)된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고 한미연합군사령부 체제 아래 통제받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한미연합군사령부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군사주권인 전작권과 외교권의 완전한 확보가 선결 과제다.

역사적으로 외교권과 군사주권의 상실은 국권 피탈로 이어졌다. 1905년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으로써 국권을 전면 상실시켰다. 해방 이후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 이양사를 보면 비극적 현대사가 드러난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당해 7월 15일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이양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진정한 자주국방을 구현하고자 작전지휘권 환수 문제를 미국 측에 처음 제기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고,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걸며 비로소 공식 의제로 부각되었다. 그 결과 1992년 노태우 정부는 평시작전통제권을 1994년 말까지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김영삼 정부는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으나, 작전수립계획·연합정보관리·연합위기관리 등 핵심적인 6대 연합권한(CODA)은 여전히 한미연합사에 남겨두어 ‘반쪽짜리 환수’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전작권 전환의 결정적 전기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었다. 양국은 전작권을 한국군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하고, 이듬해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2012년 4월 17일부로 환수 시점을 확정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안보 불안을 이유로 환수 연기 요구가 분출하면서 2010년 한미 정상은 환수 시기를 2015년 12월로 연기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기존의 시한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안보 현실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찬성론과 ‘군사주권 포기’라는 비판론의 팽팽한 대립을 낳았다. 결국 2014년 10월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국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하면서 시한 없는 연기가 고착화되었다.

당시 제시된 3대 조건은 한반도 안보 환경,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초기 대응능력 구비였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군의 독자적 대응체계 구축과 군사력 강화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핵심 비대칭 대응책인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나 이에 준하는 독자적 억제력 확보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한국군의 군사적 자립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손발을 묶는 논리적 자가당착이다. 결과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유예하려는 전략적 포석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한국군의 작전권은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전작권이 미군 장성이 사령관을 맡는 한미연합사에 기속(羈束)되어 있는 현 체제는,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의 국익과 무관하게 주변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한다.

대한민국은 경제력 세계 12위, 군사력 세계 5위의 위상을 지닌 엄연한 강대국이다. 주권국의 명분과 실리는 군사주권과 외교권의 완전한 독립에서 나온다. 온 국민이 부국강병의 뜻을 모아 대한민국이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임을 세계 만방에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박해양 지산주택㈜·백상산업개발㈜ 대표이사, 대한무술경호연합회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