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수양버들 아래 부레옥잠
수양버들과 부레옥잠 마주한 연못 흔들려도 흐르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 지난온 세월 품어 피워낼 지금의 삶
2026-11-03 고은희 울산문인협회장·북구생활문화센터장
청사초롱 불 밝힌 곳에는 중앙에 연못이 있고, 긴 가지를 물 위로 늘어뜨린 수양버들이 서 있다. 예스러움을 자아내는 버들을 보면서 걷다 보면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듯하다.
수양버들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아니다. 바람 앞에서 꼿꼿하게 버티기보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세찬 바람이 불면 가지를 낮춘다. 가느다란 잎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작은 소리를 낸다.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버들은 한자리에 서 있다. 뿌리를 땅속에 내리고, 물가의 흙을 단단히 붙든 채 가지를 흔들 뿐이다.
수양버들은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가지를 들어 올린다. 흔들림을 겪으면서도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땅속에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이 버들이 오랜 세월 물가에 서 있을 수 있는 힘일 것이다. 흔들림은 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버들이 잘 알기에 오래 견딘다.
버들 아래 부레옥잠이 물 위에 떠 있다. 둥근 잎자루에 몸을 맡기고 물결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움직인다. 뿌리는 물속으로 내려뜨린 채, 한곳에 매이지 않고 흐름을 따라간다. 붙들어 두려 애쓰기보다 움직이는 물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곳의 버들과 부레옥잠은 서로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나란히 살아간다. 수양버들은 흔들려도 돌아갈 자리를 간직하고, 부레옥잠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물 위를 건너간다. 하나는 뿌리내린 자리에서 견디고, 하나는 떠다니며 살아간다. 버들가지는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지키고, 부레옥잠은 물결이 밀어도 서로 흩어지지 않고, 제 몸을 기대어 한 무리로 떠가는 모습이다.
문득 삶에도 두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려도 돌아갈 자리를 간직하는 마음과, 때로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마음이다. 수양버들 아래 부레옥잠은 아무 말 없이 그 둘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 위에 햇살이 번졌다. 부레옥잠의 푸른 잎들이 반짝이고, 버들가지가 그 위로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마음 한구석에도 작은 물결 하나가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연보랏빛 꽃은 햇살을 받아 조용히 빛났다. 뿌리를 물속에 내린 채 어디에도 묶이지 않은 듯 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부러웠다.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면서도 자기만의 꽃을 피우고 있으니 말이다.
부레옥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젊은 날의 우리가 떠오른다. 어디로 흘러갈지 알지 못하면서도 내일이면 무엇이든 이룰 것처럼 믿었던 날들이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마음에는 꿈이 가득했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 웃었다. 젊은 날은 그랬다. 세상의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가슴속에 저마다의 꿈을 품고 버텼다. 때로는 서로 기대고, 때로는 각자의 방향으로 멀어지면서도 우리는 한 시절을 함께 건넜다.
이제는 꽃이 져도 놀라지 않는다.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때의 웃음과 눈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흘러온 세월도 저 물결과 같아서 붙잡을 수는 없지만, 그 위에 피어난 마음만은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수양버들 아래 부레옥잠처럼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띄워 보내며 오늘의 꽃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