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칼럼] 무더위 속 더위 피하기

2018-07-01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무더위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슬기롭게 극복한 조상들
물처럼 서늘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열기 잊으려 노력
올여름엔 독서나 취미활동 통해 조용한 피서 즐겨보길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올해도 절후가 하지를 지났으니 머지않아 장마와 무더위가 닥쳐올 것이다. 하기야 근년에 늦봄부터 밀어닥친 더위로 숨을 헐떡거리는 일이 일상처럼 됐으니 무더위가 닥치더라도 크게 두려울 것은 없다. 


또 예전과 달리 기상이변으로 인해 계절감을 파괴하는 만성적 지구온난화, 중국 내륙지역의 사막화로 인한 황사 발생, 탄산가스의 증가로 인한 온실효과, 가뭄과 홍수, 태풍과 강력한 회오리바람(토네이도), 지진해일(쓰나미)과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도 심심찮게 만난다. 자연의 막강한 위력을 실감케 하는 이런 기상현상은, 자연을 이기적 욕망 충족의 대상 정도로만 여겨 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왜소함을 실감케 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돌발적 재해에 따른 인내를 요구한다. 


무더위는 계절 순환에 따른 자연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여름마다 지독한 더위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강도 열기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한여름이면 시루 속에 들어간 듯 뜨겁다고 일컬어진 대구분지뿐 아니라 밀양, 영천 등지에서 그해의 최고기온을 경신하는가 하면 심지어 바닷가 지역인 강릉, 울산 등지에서도 해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혹서(酷暑)가 몰려오기도 한다. 


옛날이라고 하여 무더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들은 여름철 무더위를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서 슬기롭게 극복할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도 무더위는 자연이 내리는 커다란 시련의 하나로 인식됐음을 세시풍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누군가가 정월 대보름날 해 뜨기 전의 새벽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슬그머니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이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 가게.” 또는 “내 더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해의 더위를 남에게 미리 파는 것을 더위팔기(賣暑)라고 하는데, 더위를 판 사람은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집의 창문은 푹푹 찌고 땀은 물 퍼붓듯 흐르는데(軒窓蒸鬱汗翻漿)/ 붉은 태양과 붉은 구름 아래 낮 시간이 길기만 하네(赤日彤雲晝刻長)./ 물과 같은 상태로 될 수 있는 마음의 덕택으로(賴有寸心能似水)/ 문득 무더운 곳에서 청량함을 만드네(却於炎處作淸涼). 


이 시는 고려말기 문신인 이숭인(李崇仁)의 <지독한 더위(苦熱)>라는 작품이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지구온난화 현상이 없어서 더위가 심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이 느끼는 더위의 강도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을 알게 해 준다. 


무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은 금전과 노력을 들이는 피서법이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켜 그 열기를 잊는 것으로 일종의 회피법이었다. 물처럼 차분하고 서늘하게 가라앉힐 수 있는 마음의 덕택으로 아무리 무더운 곳에 있어도 맑고 서늘한 상태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곧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찾아오는 무더위를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강제로 퇴치하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서늘하고 그윽한 마음가짐으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긍정적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피서법은 오늘날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기온이 올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면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피서객의 숫자가 보도되고, TV 화면 속에 비친 국내외의 유명 피서지로 떠나는 바캉스 행렬에 포함된 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여름철 피서라고 여기는 오늘날의 일상적 피서행태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생계수단으로 몇 달간 종사했던 관료생활에 대해, 마음이 육신의 부림을 받았음(以心爲形役)을 통렬하게 반성했던 도연명(陶淵明)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육신의 안일보다 마음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원거리 피서를 유도하는 각종 매스컴의 요란한 부추김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집안에서 조용히 독서나 취미활동에 열중함으로써 이열치열의 묘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또 독서실이나 나무그늘 아래의 평상에서 평소에 읽지 못한 고전서적 한 권 정도를 차분히 정독해 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