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세이 칼럼] ‘로또 상봉’ 남북 이벤트…이산가족 비망록

2018-08-22     김병길 주필

1985년 ‘이산가족 상봉’ 이후 21차례
지금처럼 100명 정도씩 추첨 한다면
300년 걸려도 만나지 못해 ‘희망고문’

이산가족 1천만 명, 세계사에 없는 일 
더이상 남북협상카드로 이용 말아야
서신왕래·상설면회소서 상봉 정례화를

 

김병길 주필

1971년 10월 26일 유엔 총회에서는 자유중국(대만)이 쫓겨나고 중공(中共)이 가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남북한 양쪽은 큰 쇼크를 받았다. 남북한 모두 긴장 안화를 지향하는 국제 정치의 새 흐름에 호응하며 상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북한 김일성은 1971년 8월 6일 북한을 방문한 캄보디아 전 국가원수 시아누크를 환영하는 연설을 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협상할 뜻이 있음을 비쳤다.


박정희 대통령은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남북이산가족찾기 운동’을 북한에 제의하고, 8·15 경축사에선 평화통일을 강조했다. 북한도 이에 응해 8월 20일 남북한 적십자 관계자 판문점 회담이 열렸다. 이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공 방문(1972년 2월 21일~28일)이 있기 직전인 1972년 2월 17일까지 19회에 걸쳐 회동했다.


2월 27일엔 닉슨·주은래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이와같은 국제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은 각자 나름대로의 정치적 계산을 하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의 접촉에 나서게 되었다. 대한적십자사의 예비회담 대표인 정홍진은 1972년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북한 적십자사 예비회담 대표 김덕현도 그해 4월 19일부터 20일까지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바로 여기서 이후락 중앙정부부장의 평양 방문과 북한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김영주(김일성 주석의 동생)의 서울 방문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이후락 중앙 정보부장은 72년 5월 2일부터 5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1972년 7월 4일 박정희 정권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이른바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로 전 국민을 통일 열기에 들뜨게 만들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훗날 남북 양쪽에서 동시에 일어난 체제상의 대변화로 ‘정치적 쇼’였다는 평가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그런 문제들을 떠나서도 그 기본정신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8월 20일 남쪽의 이산가족 89명이 2박 3일간 금강산에 머물며 68년 동안 만나지 못한 북의 혈육 197명을 만났다. 24~26일엔 북측 가족 83명이 남쪽 가족 337명을 상봉한다. 지난 2015년 이후 2년 10개월만의 상봉이다.


상봉을 앞둔 가족들의 절절하고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 잇따라 보도됐다. 말이 2박 3일 상봉이지, 가족들은 통제 아래 여섯 차례에 나눠 총 11시간 만난다. 마지막 날, 살아 생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금강산 온정각은 그야말로 통곡의 현장이 된다.


1985년 고향 방문단으로 시작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건 이번 포함, 21차례다. 직접 상봉한 가족 수는 지난 5월 말 기준 4,186 가족(1만9,930명) 뿐이다. 상봉을 신청한 실향민 13만2,603명 중 7만5,544명이 한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는 5만7,059명의 62%가 80대 고령으로, 매년 4,000여 명이 세상을 떠난다. 어쩌다 이뤄지는 행사에 남북 각 100명 정도 선발하는 식이니 300년 지나도 상봉을 다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당첨된 이들에겐 ‘상봉 로또’요, 생존자들에겐 ‘희망고문’인 셈이다.


이번 행사에 상봉신청을 한 사람은 5만7,000명 가까웠다. 그 가운데 100명이 당첨되었으니 경쟁률이 568대 1이었다. 구우일모(九牛一毛)의 행운을 기대할 수 없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1985년 첫 상봉행사 이래 33년 동안 세상은 광속으로 바뀌었는데, 유독 이산가족 상봉만은 천편일률이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생색내기용으로 이용해 온 탓이다.


분단과 6·25 전쟁으로 발생한 이산가족 1천만 명은 세계역사에 없는 일이다. 그 많은 실향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것은 상봉도, 생사확인도, 서신교환도 할 수 없는 인륜상의 형벌이었다. 


사람 마음은 묘해서 죽은 자에 대해서는 체념과 망각이라는 치유약이 있다. 그러나 휴전선 너머에 있을 육친의 안부를 알길이 없거나, 전화나 서신교환 같은 소통의 길이 없음은 피할 수 없는 마음의 형벌이다.


이제는 근본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산가족이 더 이상 남북 협상의 카드가 돼서도, 남북 화해의 상징인양 이벤트에 그쳐서도 곤란하다. 지구 끝,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스마트폰으로 화상통화 할 수 있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코미디이자 비극이다. 생사와 주소를 확인하고 서신이나 전화, 화상으로 연락할 수 있어야 된다. 상봉의 정례화, 상설면회소 설치도 절실하다.


한 해에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리고, 스포츠 단일팀이 단골 이벤트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이산가족 상봉만이 옛날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봉가족 규모도 행사장소도 그렇다. TV로 보여주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달려가는 버스 행렬, 자녀 부축을 받아 행사장에 들어선 혈육들. 알아보지 못할 지경으로 변한 서로가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모습으로 온 국민을 울려야 하나. 그리고 못내 아쉬운 이별의 장면을 끝으로, 또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은 얼마나 큰 형벌이며 애간장을 끊는 고문인가. 이제 비극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