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대] 나를 되돌아본다

2019-03-10     김종섭 울산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논란 분분한 공무국외출장 셀프심의 등
지방의원들 잇단 사건사고로 국민 질타
주민 충고․의견 수용 함양․체찰 새겨야

김종섭울산시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솔직히 부끄럽다. 부끄러운 정도를 넘어 참담하다. 정말로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자고 나면 또 어떤 지방의원이 신문과 방송에 사건사고로 이슈가 돼 등장할 지 두려울 정도다.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을 주름잡는데 여야가 따로 없다. 지역은 물론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의 구분이 무색할 만큼, 지방의원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건사고를 일으키면서 질타를 받고 있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 강북구의회 소속 모 의원의 공무원 폭행이 이슈가 돼 전국이 떠들썩하다.

이유야 어떻든 또한 서로 당사자 간의 잘잘못을 떠나서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이 시민들이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해달라고 뽑아준 대변자 역할이 아님은 분명하다.
급기야 요즘들어 지방의원과 지방의회 폐지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방의원과 지방의회 무용론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 지방의회와 지방의원들이 주민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보수 명예직일 때는 그나마 지역밀착형 생활정치를 펼친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나름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얼마 되지 않은 회의수당만 받고도 지역 주민의 대변인이자 봉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무보수 명예직의 한계도 분명 있었다. 재력가와 명망가들이 지방의회를 독점하다시피하면서 능력과 실력을 갖춘 전문가들의 진입장벽이 낮고, 신진인사들의 진출이 봉쇄된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방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이 도입됐고, 무보수 명예직도 유급제로 전환됐다. 유급제 전환과 정당공천으로 다소의 전문가와 신진인사가 지방의회의 문턱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지방의원 스스로 구태와 악습의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고, 자정기능을 많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를 가든 특별한 대우와 혜택을 바라고 기대하는 심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지방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솔직히 필자도 부지불식간에 얄팍한 지방의원의 특권에 물든 언행을 했을지도 모른다. 삼가고 또 삼가고,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고 하지만, 본의와 무관하게 상대방은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요즘들어 지방의원과 지방의회를 두고 가장 논란이 분분한 공무국외출장만해도 그렇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출장 당사자가 심의위원으로 들어가는 셀프심의를 당연히 공정하다고 인정하지 못 할 것이며, 투명하다고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선수 자신이 심판역할까지 겸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경북 예천군의원들의 사태가 발생했고, 과천시의원의 본인 가족이 있는 곳으로의 연수 논란이 촉발됐던 것이다.
외부 전문가들의 철저한 심의와 검증을 거쳤더라면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많이 든다.

필자가 소속된 울산광역시의회도 한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공무국외출장 기획단계에서부터 나름 충분히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지방의원과 지방의회를 바라보는 깊고 넓은 불신의 늪을 쉽사리 헤어나올 수 없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울산광역시의회는 주민들의 충고와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 셀프심의가 이뤄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그것만으로 지방의원과 지방의회에 대한 무용론과 폐지론의 뜨거운 불길을 피해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잠시 모면할 수 있지만, 지방의원과 지방의회가 잃어버린 신뢰와 애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진솔한 참회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필자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다잡아 본다.
퇴계 이황 선생은 능력이나 품성을 기르고 닦는 ‘함양’과 몸소 자세히 살펴본다는 ‘체찰’을 평생의 신조로 여겼다. ‘왜 부끄러움은 국민들의 몫이어야 하느냐’는 자조와 원망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자는 물론 지방의원 모두가 함양과 체찰(體察)을 깊이 또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