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V 특집-공간 空間] 칼럼니스트 김병길 “나의 공간은 ‘종이신문’이다”
[영상은 7월 9일 울산매일 UTV 홈페이지 및 UTV 유튜브 채널 등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스마트폰 뉴스 시대에 여전히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이가 있다. 16년째 울산매일신문 칼럼 ‘반구대’를 매일 쓰고 있는 김병길 주필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종이신문과 동고동락한 그에게 특별한 공간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종이신문이다. 종이신문은 그에게 기억과 현실의 공간이자 매일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UTV는 본지 창간 28주년을 맞아 창간멤버이기도 한 김병길 주필이 말하는 공간을 영상에 담고, 김 주필의 글 ‘나의 공간은 종이신문이다’를 싣는다.
종이신문은 ‘기억의 공간이자 현실의 공간’
진실과 거짓·사람들의 이야기 매일 찍어내
잘 만든 종이신문, ‘잘 차려진 밥상’과 같아
가짜뉴스 많은 인터넷 대신 진짜 뉴스 전해
공간은 기억을 담는다. 공간은 추억을 강하게 붙잡아 준다. 잊고 있던 기억도 그 기억이 담긴 공간을 찾아가면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난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추억은 잘 공간화 되어 있으면 그만큼 더 단단히 뿌리 박아, 변함없이 있게 되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면 두 개의 공간에 살고 있다. 식탁이라는 현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가상의 공간에 있다.
따지고 보면 장소 없는 추억이란 없기에 공간은 늘 기억을 잉태한다. 공간의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다. 적어도 기억 속에서는 인간이 공간에 점유 당한다.
나의 공간은 ‘종이신문’이다. 종이 신문은 기억의 공간이자 현실의 공간이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신문은 항상 집에서 읽을 수 있는 것, 매일 읽는 것이었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그 모든 것을 담아 매일 찍어내는 책이기도 했다. 보이는 것과 숨겨진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을 준 것도 신문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을 수도 있지만, 잉크냄새 흠뻑 밴 이 얇고 큰 정기 간행물은 모든 텍스트들처럼 언제나 읽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책이든 신문이든 헌신적으로 읽다 보면 적어도 한가지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인지.
뭔가에 깊이 몰두하다 보면 삶이 바뀔 수도 있다. 어릴적부터 신문을 읽어오다가 몰두하고 싶은 것을 찾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신문기자가 됐다. 신문(新聞)이 세상의 사건에 대한 사실이나 해설을 널리 신속하게 전달하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쾌하게 전해준다면 이 디지털 시대에도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애수를 갖게도 하는 친숙한 매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오늘을 기록하고 오늘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현존하는 세상을 매일 아침 활짝 펼쳐 보여주는 신문을 나는 눈을 뜨면 사랑한다.
‘활자들만 모른 체하면/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 쓸쓸한 마른 보자기일 때가 좋다// 그 신문지를 펼쳐놓고 일요일 오후가/ 제 누에발톱을 툭툭 깎아 내놓을 때가 좋다// 어느날 삼천원 주고 산 춘란 몇 촉을/ 그 활자의 만조백관들 위에 펼쳐 놓고/ 썩은 뿌리를 가다듬을 때의 초록이 좋다// 예전에 파놓고 쓰지 않는 낙관들을/ 이마에 붉은 인주를 묻혀 흉흉한 사회면 기사에 붉은 장미꽃을/ 가만히 눌러 피울 때가 좋다…’(유종인의 시 ‘신문’)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라는 동심이 느껴지는 종이신문의 모습이다.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쓸쓸한 마른 보자기일 때가 좋다’며 시인은 거기 실린 기사보다 사뭇 훌륭한 신문지의 쓸모를 이모저모 펼친다.
언론으로서의 신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애둘러 말하고 있다.
벼슬아치들의 썩어빠짐을 건들지 못하는 정치면에는 춘란이라도 펼쳐 놓고 그 썩은 뿌리를 가다듬는다. 사회면에는 온통 흉흉한 기사. 오랜만에 낙관이나 꺼내 찍어볼까. 붓글씨 연습을 해도 좋겠지. 정치도 그 무엇도 여론을 전혀 존중하지 않으면서 시끄럽고 흉흉하기만 한 언론 매체들.
프랑스 화가 폴 세잔느의 아버지는 부유한 은행가였다. 그는 아들이 법률가가 됐으면 했다. 세잔은 아버지 뜻을 따라 법대에 갔지만 화가의 꿈을 접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다. 1866년 스물일곱살 아들 세잔은 의자에 앉아 신문 읽는 아버지를 그렸다. 신문은 세잔과 아버지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어느해에 주최한 신문읽기 논술대회 수상작엔 종이신문의 매력에 대한 글이 가득했다. 한 중학생은 ‘신문은 잘 차려진 밥상’이라 했다. ‘며칠 전 신문을 꼼꼼히 뒤지다 ‘밥상’을 발견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은 밥과 김치, 된장찌개다. 특집은 특별메뉴 삼겹살, 기획기사는 계절나물 무침과 장아찌, 어린이 지면은 메추리알 조림 같다. 밥상만 받고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소용없다.’ 생생한 비유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뉴욕타임스 IT 전문기자 파하드 만주는 ‘두 달간 종이신문만 봤더니’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는 두 달간 스마트폰 뉴스 앱을 껐다. 대신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신문 3종과 주간지 하나만 집에서 읽었다.
쉴 새 없이 긴급속보를 알리던 스마트폰을 끄고 나니 괴물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달간 그는 책을 여러권 읽었고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더 나은 남편과 아버지가 됐다고 썼다.
온라인에서는 뉴스 자체보다 논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논평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왜곡 시킨다. 파하드 만주는 종이신문 읽기는 외롭지만 뉴스와 직접 만나는 기회라고 했다. 스마트폰에서 쏟아내는 부정확한 정보 대신, ‘진짜 뉴스’만 가려 전달해주는 게 종이신문의 미덕이라고도 했다. 수백명의 전문가가 나를 대신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서 집까지 배달해주는 종이신문이다.
부부가 침대에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뉴스 중독’ 시대다. 대화는 사라지고 불필요한 정보는 넘쳐난다. 종이신문에 정확하고 깊이 있는 뉴스를 싣기 위해 취재부터 배달까지 사람 손을 거친 정성과 온기가 배어 있다. 종이신문만 줄 수 있는 별미(別味)라고 말 할 수 있다.
IT처럼 빨리 변하는 분야에서는 쌓아 놓은 지식보다 지식을 쌓아가는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라디오가 세상에 등장한 뒤 5,000만 명이 쓰기까지 38년이 걸렸다. TV는 13년, 인터넷은 4년, 아이폰은 3년 걸렸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80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토록 무섭게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고 주도하기 위한 관점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차곡차곡 접힌 신문 뭉치에서 얻을 수 있다. 신문 기사에는 관점이 담겨 있다. 신문 하나를 읽으면 기사 수만큼의 여러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차별화도 결국 관점이 좌우한다. 숨가쁜 IT 시대를 느린 신문 읽기로 따라잡으라는 역설이다.
종이신문의 하루치 원고량은 얼마나 될까. 분석한 결과 중앙일간지의 경우 200자 원고지 1,000장 정도라니 300쪽짜리 책 한 권 분량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한 달 내내 신문을 구독하면, 자그마치 단행본 24권을 읽는 셈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지만 종이와 신문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제프 코프만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종이로 글을 읽는 게 디지털화면에 비해 종합적인 판단과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됐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정보의 제1가치인 정확성과 심층성으로 봤을때,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인터넷 모바일 매체는 종이신문을 따라올 수 없다. 인터넷의 수많은 뉴스 가운데 핵심 콘텐츠 대부분은 신문기자들이 발로 뛰며 취재하고 꼼꼼히 확인한 것이다.
의미 있는 정보를 자유롭게 유통하고 다양한 의견으로 공론을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신문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위한 인프라가 아닐 수 없다. 뉴스와 진실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공기(公器)로서 신문의 기능도 계속될 것이다.
■ 약력
- 現 울산매일신문·UTV 주필
- 휘문고교·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합동통신·중앙일보·중앙경제 기자·데스크 역임
- 경상일보·한울신문 편집국장 역임
- 연합뉴스 기획위원 역임
- 울산매일신문 편집국장 역임
- 저서 ‘언관사관’(1994), ‘고래등 새우등’(1997),
‘칼럼 콘서트’ 전 3권(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