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년특집] ‘농업’에서 미래를 꿈꾸는 청춘들 김동규 북구 광수농원 대표무화과 수확→가공·농가체험 기획…배움통해 아이디어 실현
1,000평 부지에 무화과나무 심어
로컬푸드 판매…생산·판로 ‘적당’
폭설로 하우스 붕괴 ‘좌절’ 맛봐
수확 후 유통기한 2~3일 너무 짧아
물러져 버리는게 더 많은 날도 있어
집안 대대로 담그던 식초 제조 판매
일손 덜고 유통기한 스트레스 없애
전국 교육기관 돌며 농사 배워
캠핑장 운영·농가체험 등 계획
2차 가공사업도 고려 청사진 뚜렷
울산 북구 대안동에 위치한 ‘광수농원’. 경주에 살짝 발을 디뎠다가 다시 울산으로 돌아오면 만나는 동네. 동해 바다가 보일 정도로 높은 지대로 다른 곳보다 3~4도씩 기온이 낮은 곳. 인적 드문 동네 입구에 아기자기한 글씨체로 반기는 팻말. ‘광수농원’은 10년 전 귀농을 시작한 김동규(36·사진) 대표가 아버지의 함자(銜字)를 따 꾸린 곳이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김동규 대표는 10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식당을 준비하던 예비 창업자였다. 대학에서 호텔조리를 전공했고, 유학도 다녀왔던 김 대표는 문득 울산에 돌아와 ‘농부’가 됐다.
“북구 천곡, 농소 일대에서 살았어요. 대안동에 땅은 아버지가 은퇴 후에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래 전부터 매입한 곳이에요. 상수도도 들어오지 않고, 도로 포장도 되지 않은 외진 동네였어요. 아버지가 귀농하려던 곳에 제가 먼저 농사를 짓게 됐죠.”
2,000~3,000평가량 허허벌판에서 귀농생활을 시작한 김 대표의 선택은 ‘무화과’였다. 당시 울산에는 흔하지 않은 작물이었고, 그만큼 시장 가격도 꽤 높게 형성돼 있었다. 약 1,000평 정도의 부지에 무화과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하우스에 절반, 일반 밭에 절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관광지인 북구 정자로 넘어가는 길에 직거래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손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부는 로컬푸드로도 판매됐다. 대부분 혼자 일하는 김 대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많은 생산량에, 판로도 ‘적당’했다고 했다. 2014년 2월 폭설이 내리기 전까지는 딱 그랬다. 이례적인 폭설로 북구 공장 지붕이 무너지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강당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났던 때다.
“시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 동네는 8일 동안 쉬지 않고 눈이 왔어요. 1.5m 정도 눈이 쌓였는데 사람도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죠. 그 눈 때문에 하우스가 폭삭 무너져 내렸어요. 하우스가 무너지면서 안에 있던 무화과 나무가 다 죽어버렸죠. 게다가 남은 쓰레기까지…. 빚을 내서 지은 하우스였는데, 하우스는 사라지고, 빚은 그대로인 게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그 잔해를 치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도 한켠에 쌓여있는 걸요.”
이후로 무화과 수확량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했다. 폭설 피해의 잔해를 치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무화과를 계속 키우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고 했다. 무화과는 늦여름 한철 과일이다. 그만큼 일손이 필요한 시기가 8~10월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확 후 유통기한은 2~3일로 너무 짧은 게 문제였다. “혼자 수확하느라 고생도 고생인데, 이게 또 곧바로 판매가 돼야 하거든요. 2~3일만 지나도 금방 물러져서 판매를 할 수 없는 상품이 돼버리죠. 수확해서 버려야 하는 게 더 많은 날도 있는 거예요.”
여기서 생각해낸 게 ‘식초’였다. 집안 대대로 담그던 방식대로 식초를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 해법이 됐다.
“과일 키우는 분들이 상품으로 판매하지 못하면 다들 ‘즙’으로 가거든요. 그건 너무 흔해서 안될 거라 일찌감치 생각했어요. 할머니께서 식초를 직접 만드셨는데, 아버지가 그 방법을 배우셨어요. 할머니가 막걸리도 만드셨는데, 그건 전수받지 못하셨대요.”
김 대표 아버지의 손맛은 ‘식초 공장’에서 재탄생됐다. 2016년 11월 사업자를 낸 뒤 정식 판매에 나섰다. 식초 판매 3년차에 접어든 광수농원은 수확한 대부분의 무화과를 식초로 가공하고 있다. 생 무화과를 찾는 단골손님을 위한 상품 일부만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광수농원이 무화과 식초로 얻는 매출은 현재 2,000만원 수준이다. 가공을 거쳤다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생과’로 판매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손을 덜고, 유통기한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수준이다. 최근에는 해피빈 펀딩 상품으로 등록되면서 판로를 다양하게 넓히고 있다. 직접 담근 무화과 청도 판매 중이다.
김동규 대표는 최근 다시 출발선에 섰다. 10년 전 무작정 무화과 농사를 시작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2018년부터 벤처농업대학, 청년농업사관학교 등 전국의 교육기관을 돌아다니면서 농사를 배우고 있다. 2019년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에도 참가했다. 2018년부터는 조금씩 품종을 늘리는 도전도 하고 있다.
“주변에 농사를 지어본 사람도 없다보니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작물을 심는 시기나 온도, 어떤 묘목을 골라야 하는지, 어떤 농약이 필요한지, 어떤 비료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요. 그러다보니 농약방 같은 곳에서 권하는 것들만 구입해 쓰고 있고, 하지 않아도 될 실수도 많아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됐죠. 앞으로 5년 정도는 수익이 줄더라도 차근차근 배워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초심자로 돌아간 김 대표의 청사진은 뚜렷했다. 농원에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농가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바다 전망의 넓은 ‘광수농원’의 장점을 살려보겠다는 계획이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도 꽤 있고, 가족들과 함께 농장을 체험하면서 숙박하는 수요는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샤인머스켓을 심었는데, 3년 뒤에는 수확도 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2차 가공 사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식초 공장을 활용해 ‘전통주’에도 도전해볼 작정이다. 공장을 다른 청년창업농들과 공유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저는 식품을 생산해볼 수 있는 공장 시설을 갖고 있잖아요. 아이디어는 있지만, 그걸 시도해볼 수 있는 인프라를 찾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부족하지만 서로의 인프라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1차 산업 한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이디어”
“규모의 경제라는 게 농업에서도 분명 적용되는 개념이에요. 지금이야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막혀 있지만, 거대한 부지에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농사를 짓는 게 앞으로 머지않은 것 같아요. 이미 그렇게 하는 농가들도 있어요. 그런 곳의 생산량은 소규모 농가에 비해서 최소 10배 이상 많죠. 시장에 쏟아지는 생산량과 가격 경쟁력을 따라갈 수 없을 거예요. ‘1차’ 산업만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게 현실이죠.”
광수농원 김동규 대표가 생각하는 해답은 ‘6차 산업’이다. ‘생산’에 초점을 맞춘 농업이 아닌 ‘체험’을 고려한 농업에 길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람들은 진짜 농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농업을 체험하고 싶어하죠. 각자가 갖고 있는 농업에 대한 생각을 한번 해볼 수 있는 체험이요. 그래서 농촌체험 같은 관광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체험을 어떻게 농업과 연계할지, 이런 것들은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곧장 농업에 뛰어들 수 있는 현실은 아니다. 김 대표는 신중, 또 신중을 이야기했다.
“농업도 개인 사업이죠. 그런데 도심에서 카페를 차리는 것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도 더 많은 초기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죠. 부지도 있어야 하고, 시설도 갖춰야 하고. 주변 환경을 비롯해 위험요소는 더 크다는 게 문제죠. 가게를 하다가 망하면 보증금이라도 남아있고, 설비는 중고로라도 처분할 수 있는데, 농사를 짓다가 잘못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어요.”
청년창업농의 자립을 위해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농업 같은 것을 전공하고, 몇년씩 꾸준히 배우면 좋겠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농촌의 미래를 위해서는 청년들이 유입돼야하고, 제대로된 청년창업농들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