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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울산광역시 현판식 장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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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구 초대 민선 울산시장 별세
심완구 전 시장은 2선 국회의원과 초대, 2대 민선 울산시장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과 울산광역시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최근까지도 지역 발전을 위한 제언을 아끼지 않는 등 남다른 울산사랑을 보였다.
#야음 송호마을에서 태어나
고인은 1938년 당시 울산군 대현면 야음리 송호마을(현 울산광역시 남구 야음1동 송호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현초등학교, 울산제일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 신민당에 입당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재도전해 민주정의당 김태호 후보와 함께 당선돼 첫 배지를 달았다. 이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남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3당 합당 후인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통일국민당 차수명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 초대, 2대 울산시장 당선
절치부심하던 고인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1997년 7월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장이 됐다. 그는 광역시 승격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후 당시 막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로 옮겼다. 민주화운동 시절 DJ의 비서로 일한 인연이 있었다. 그는 야당 광역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 했다. 그가 당적을 옮긴후 DJ정부는 지지부진하던 울산 신항만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측에 서기도 했지만,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일부 상도동계 정치인들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2014년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 후보를 지지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송철호 후보를 도왔다.
# ‘광역시 승격’ ‘월드컵 개최’ 큰 족적
울산을 광역시로 승격시켜 산업수도 울산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 고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그는 민선1기 시장으로 취임한 후 광역시 승격을 신항만 건설, 2002년 월드컵 유치와 함께 울산의 미래 성장 전략의 하나로 추진했다. 광역시 승격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서부 경남 출신 국회의원들과 당시 울산시가 포함된 경상남도 도의회, 중앙정부 모두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집요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고인은 울산광역시승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국회의원, 시민단체, 기업체 등과 함께 기여이 광역시 승격을 이뤄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광역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국내 월드컵 개최도시 중 최초로 문수경기장을 개장하는가 하면 울산대공원과 달동 문화공원 등 시민휴식공간 확보, 시내 주요 간선 도로를 확충, 특 1급 규모의 롯데호텔을 유치하기도 했다. 고인은 특히 신항만 건설을 필요성을 인식, 답보 상태에 있는 신항만 건설을 본격화 했다. 신항만 건설 사업에는 2011년까지 모두 3조 5,195억원이 투입됐다.
# 임기 중 '폐암치료', '비리연루' 그림자도
민선 2기 막바지였던 2001년 8월 무릎 육종암이 폐로 전이되자 치료를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건강를 회복했다. 하지만 지역 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던 건설사의 비리와 연루돼 임기를 다 마무리하지 못했다. 결국 옥중에서 퇴임을 하는 불명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