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완구 전 울산시장의 영면을 기원하며…
심완구 전 울산시장이 어제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병마와 힘겹게 싸워온 지 오래됐으니 천수를 온전히 누렸다고 하긴 어렵다. 고인은 최근까지 지인들을 만나 지역 발전을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급작스런 비보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심 전 시장의 생은 우리나라와 울산의 정치의 굴곡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는 국회의원 2선과 초대, 2대 민선 울산시장을 역임했다. 그의 정치 이력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늘 함께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영삼 총재의 신민당에 입당하면서 파란만장한 정치의 길에 들었다.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한국당 후보로 울산남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13대 총선에서는 통일민주당 후보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3당 합당 후인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절치부심하던 고인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1997년 7월 울산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울산광역시장이 됐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는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겼다. 그의 탈당은 지역 정치권에 큰 충격을 줬다. 민주화운동 시절 DJ의 비서로 일한 인연이 있었지만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힘 있는 여당’이었다. 그는 여당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지지부진하던 울산 신항만 건설사업을 요구해 DJ정부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당시 심 시장과 함께했던 이들은 지금도 울산신항을 ‘심완구항’이라고 할 정도다.
고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울산을 광역시로 승격 시킨 것이다. 당시 광역시 승격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서부 경남 출신 국회의원들과 당시 울산시가 포함된 경상남도 도의회, 중앙정부 모두 울산의 광역시 승격을 집요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고인은 울산광역시승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국회의원, 시민단체, 기업체 등과 함께 광역시 승격을 이뤄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고, 개최하면서 광역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확보했다. 울산대공원과 달동 문화공원 등 시민휴식공간 확보, 시내 주요 간선 도로를 확충도 고인의 치적이다.
하지만 그는 민선 2기 임기를 옥중에서 마쳐야 했다. 지역 토지구획정리사업 비리와 연루된 탓이다. 건강도 마지막 임기를 순탄하게 보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나 지역의 어른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한 제언을 마지막까지 아끼지 않았다. 수술 탓에 제 소리를 잃었지만, 울산에 대한 애정이 깊게 배인 고인의 목소리는 언제나 쟁쟁했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